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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제정 체제에 대한 불만, 그리고 자유주의 사상의 전파는 점차 체제 변혁의 열망으로 변해갔고, 1790년,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이라고 불릴 사건이 터져나오게 된다.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마누일 플레톤'이 제국 정부로부터 '''제국에 대해 불경한 발언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 후 사형이 언도되었는데, 그는 단지 유명한 철학자였던 것을 넘어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는 저명한 인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각계각층에서 그에 대한 자비로운 선처 또는 사면, 무죄 석방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당대의 황제 '''요안니스 11세'''는 그러한 여론을 모두 무시하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을 모두 엄벌하겠다고 선포한 것이,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폭발시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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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8 |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당대의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이 먼저 반기를 들었으며, 나라가 혼란해지자 국가에 불만을 가진 빈민들이 일제히 항거한 것이다. 이들은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성 소피아 대성당과 황궁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그곳에서 제정의 폐지를 선언하고 황제 요안니스 11세를 참수함으로서 혁명의 완수를 선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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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제 1 공화정 === | |
| 41 | 동로마 제국의 공화주의자들에게는 한 가지 확고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공화정이었다. 혈통에 의해 대대손손 세습되는 군주직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들' 사이에서 일정 기간동안 임기를 맡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에 참가한 공화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지금이 바로 '옛 공화정의 전통을 되살려 드높일 때' 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