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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18세기 말~19세기 초 당시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기조에 의해 로마 노바 제 1공화정은 '신 로마법'을 제정하고, 집정관을 선거로 선출하며, 원로원 의원들 또한 선출하는 등 의회주의적 체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나, 후대의 평가에 따르면 '제 1공화정은 비록 로마에 공화정 전통을 되살렸다는 의의가 있으나, 지나치게 고대 로마, 그리스의 공화정 전통에 집착하여 시대착오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는 크나큰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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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제 1 공화정은 사실상 일부 '자유주의적' 귀족[* 실제 역사적 사실로,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에 따르면, 오히려 1800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제한적인 선거권'을 옹호하였고, 이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보통 선거권'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자'들을 '표수'로 눌러버렸다.]들과 요안니스 11세의 반대파, 소수의 부르주아들이 원로원직과 집정관직을 독점하는 '''과두제'''에 가까웠으며, 집정관은 고대 로마의 집정관들처럼 연임에 제한이 없어 10년, 20년 이상 연임하는 등 사실상 '선거 군주제'에 가까웠다. 당연히 피억압자이자 하층 신분이었던 민중들은 로마 제정이 있던 시기나 제 1 공화정이 있던 시기나 '억압자가 혈통으로 계승되는가, 아니면 형식상 선거로 뽑히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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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45 | 제 1 공화정은 사실상 일부 '자유주의적' 귀족[* 실제 역사적 사실로,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에 따르면, 오히려 1800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제한적인 선거권'을 옹호하였고, 이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보통 선거권'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자'들을 '표수'로 눌러버렸다.]들과 요안니스 11세의 반대파, 소수의 부르주아들이 원로원직과 집정관직을 독점하는 '''과두제'''에 가까웠으며, 집정관은 고대 로마의 집정관들처럼 연임에 제한이 없어 10년, 20년 이상 연임하는 등 사실상 '선거 군주제'에 가까웠다. 당연히 피억압자이자 하층 신분이었던 민중들은 로마 제정이 있던 시기나 제 1 공화정이 있던 시기나 '억압자가 혈통으로 계승되는가, 아니면 형식상 선거로 뽑히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비록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이 벌어졌을 당시 성 소피아 대성당이 점거당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세속주의적 경향이 자리잡은 것과 달리 교회는 여전히 강성하였고, 종교적인 억압정책과 제국내 반이슬람 기조도 유지되었다.[* 로마 제국이 반이슬람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제국 내에서 이슬람교는 악마화되었고, 대 투르크에 대한 총반격이 성공하면서 상당수의 투르크인들이 로마 제국의 백성으로 복속되었는데, 이들의 이슬람 신앙 자체는 제국법에 의해 일단 보장은 되었으나 제국내 반이슬람 정책에 의해 꾸준한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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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7 | === 두 번째 혁명, 그리고 제 2 공화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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