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87 vs r88 | ||
|---|---|---|
| ... | ... | |
| 143 | 143 | ||<:> 세계 1차 대전의 참호|| |
| 144 | 144 | 1915년부터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전선은 고착 상태에 빠지며 본격적인 참호전이 전개되었다. 서부전선에서는 독일군이 1915년 4월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염소가스를 사용하며 화학전을 도입했다. 독가스는 연합군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독일군이 이를 결정적인 승리로 연결하지 못하면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후 연합군도 독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참호전의 잔혹함은 더욱 심화되었다. |
| 145 | 145 | |
| 146 | 동부전선에서는 1915년 5월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를 단행하여 러시아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 |
| 146 | 동부전선에서는 1915년 5월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를 단행하여 러시아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 |
| 147 | 147 | |
| 148 | ||
| 148 | 이 공세로 인해 러시아군은 [[1914년]] 점령했던 갈리치아 지역에서 후퇴해야 했으며, 독일군은 바르샤바를 포함한 러시아 폴란드를 점령하며 동부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 공세로 러시아 제국은 큰 군사적 손실을 입었고, 내부적인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 |
| 149 | 149 | |
| 150 | ||
| 150 | 한편, 1915년 5월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는 [[대영제국|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러시아 제국|러시아]]와 런던 조약을 체결하며 삼국동맹에서 이탈하고 연합국 측으로 참전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에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었으며, 이손초 강을 중심으로 반복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 |
| 151 | 151 | |
| 152 | 191 | |
| 152 | 이손초 전투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양측 모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 |
| 153 | 153 | |
| 154 | ||
| 154 | [[오스만 제국]]은 [[독일 제국|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동맹을 맺고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이에 대응해 [[대영제국|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는 1915년 갈리폴리 전역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다. | |
| 155 | 155 | |
| 156 | ||
| 156 | 연합군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확보하고 [[오스만 제국]]을 전쟁에서 이탈시키려 했지만, 오스만군의 강력한 저항과 지형적 불리함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고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지휘한 무스타파 케말(훗날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전쟁 영웅으로 부상했다. | |
| 157 | 157 | |
| 158 | 1916년에는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가 이어졌다. 독일군은 2월부터 12월까지 베르됭 전투를 벌이며 프랑스군을 압박했다. 독일군은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전력을 소진시키려 했지만, 프랑스군은 "그들은 통과하지 못하리라(Il ne passeront pas!)"라는 슬로건 아래 필사적으로 방어했고, 결국 독일군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후퇴했다. 베르됭 전투에서만 7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전쟁의 잔혹함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 |
| 159 | ||
| 160 | 베르됭 전투에 대한 대응으로 연합군은 7월부터 11월까지 솜 전투를 개시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으나, 전투 첫날 영국군은 단 하루 만에 6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하며 전쟁사에서 최악의 첫날 손실을 경험했다. | |
| 161 | ||
| 162 |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양측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최종적으로 연합군이 약간의 전선 진격에 성공했으나 전략적 성과는 미미했다. 솜 전투에서 영국군은 최초로 전차(Tank)를 사용하며 새로운 전쟁 기술을 도입했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미완성된 상태였기에 전황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 |
| 163 | ||
| 164 | 1915년과 1916년의 전쟁은 기존의 기동전 개념에서 벗어나, 철저한 소모전과 참호전으로 변화하며 전장 환경을 극도로 가혹하게 만들었다. | |
| 165 | ||
| 166 |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각국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고, 군인들과 국민들의 피로감은 점점 커져갔다. 이로 인해 1917년 이후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며, 결국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었다. | |
| 158 | 167 | === 전쟁의 확대와 미국의 참전 (1917년) === |
| 159 | 168 | 1917년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해였다.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정이 극에 달하며 내부에서 혁명이 발생했다. 2월 혁명으로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전쟁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격화되었다. 임시정부는 연합국 측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려 했으나, 전쟁으로 지친 러시아 국민과 병사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결국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1918년 3월 3일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며 전쟁에서 이탈했다.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폴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 우크라이나 등 광대한 영토를 상실했으며, 독일은 동부 전선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서부 전선으로 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 160 | 169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