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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February Revolution)으로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전쟁 지속 여부를 두고 내홍이 발생했다. 결국 10월 혁명(October Revolution)을 통해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 1918년 3월 3일)을 체결하고 전쟁에서 이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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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영국에 대한 해상 봉쇄를 강화하기 위해 무제한 잠수함 작전(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을 재개하였으며, 이에 따라 미국 선박들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여기에 짐머만 전보 사건(Zimmermann Telegram)이 공개되며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 공격을 부추기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내 반독 감정이 고조되었다. 결국, 1917년 4월 6일,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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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마지막 공세와 종전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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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강화 조약으로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철수한 독일은 1918년 춘계 공세(Spring Offensive)를 감행하며 서부전선에서 승부를 보려 했다. 하지만 제2차 마른 전투(Second Battle of the Marne, 7월~8월)에서 연합군이 독일군을 저지하며 반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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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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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트러시아러시아혁명으로 한후 적백내전에서 승리기위해 조약을 으며 전쟁에서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등의유로 항복 베르유조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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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00일 공세(100 Days Offensive, 8월~11월)서 영국, 프랑스, 미국군이 독일군을 밀어내면서 전황이 급격히 연합국 쪽으로 기울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전쟁 피로도극심해졌고, 11월 9일 황제 빌헬름 2세가 퇴위하며 독일은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결1918년 11월 11일, 독일은 컴피뉴에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체결 전쟁이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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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처리와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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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이 체결되며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과 군사적 제한부과받았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 발발 원인되었다. 오스트리아-헝리와 오스만 제국해체되었고, 국제 연맹이 창설되었으나 세계 평화를 유지 데 한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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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차 대전은 인류 역상 최초의 총력전으로, 이후의 국제 질서와 전쟁 양상결정짓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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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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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성장했고 영국을 넘어선다.독일 서프로이화정인 이마 공화국이 다.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각구성국으분산 남티롤과 갈라치아 로드메리아,발칸지역을 는다.오스만 제국또한 모든 영토 으나 전쟁을 일으켜터키영토를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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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패전으로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은 컴피에뉴 휴전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항복했으며,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연합국이 부과한 베르사유 조약을 수락해야 했다. 독일은 이 조약을 통해 전쟁의 모든 책임을 인정해야 했으며, 엄청난 금액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또한 독일군은 10만 명 이하로 감축되었으며, 전차, 항공기, 잠수함과 같은 주요 군사 장비의 보유가 금지되었고, 라인란트는 비무장 지대로 설정되었다. 영토적으로는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고, 동부 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했으며, 해외 식민지를 모두 상실했다. 독일 국민들은 이를 굴욕적인 조약이라 여겼고, 이후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불안정한 정권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극단적인 정치 세력의 성장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나치 독일의 부상을 촉진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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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서부전선이 프랑스 영토에서 전개되면서 국토가 심각하게 황폐해졌으며,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다. 프랑스 정부는 독일에 대한 강한 보복 조치를 원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의 군사력을 철저히 제한하경제적 보상을 요구했다. 알자스-로렌을 되찾았고,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여 전후 경제 재건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독일의 반발을 초래했고, 국제 사회에서 프랑스의 강경한 태도는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는 전후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영국과 미국과의 동맹강화하고자 했으나, 미국이 고립주의 정책을 택하며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면서 프랑스는 독일을 견제할 확실한 동맹국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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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시 승전국이었으나 경제적 부담이 컸다. 전쟁 동안 엄청난 자금을 지출하며 국채가 급증했고, 전쟁이 끝난 후 실업률이 상승하고 경제 침체가 발생했다. 그러나 영국은 해외 식민지에서 독일 식민지를 추가로 획득하면 대영제국의 세력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베르사유 조약에서 랑스보다는 상대적으 온건한 입장을 취했으며, 독일 너무 심하게 약화될 경우 유럽의 균형이 무너질 것우려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영국은 중동 지역의 위임통치를 확보하며 전략적 이점을 얻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사회 불안이 조되었으며, 아일랜드 문제와 노동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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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쟁의 후반부에 참전하여 비교적 적은 피해를 입었고, 전후 국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후 평화를 위한 14개 조항을 제안하며 국제 질서 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국제 연맹 창설을 주도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전후 외교 책에 대한 회의적시각 커졌으며, 결국 미 의회는 국제 연맹 가입을 거부하며 고립주의를 선택했다. 이는 미국이 유럽 문제에서 점차 거리를 두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전쟁 기간 동안 급성장한 미국 경제는 유럽 국가들에게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며 국제 금융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으나,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이 체제는 무너지고 이후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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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전쟁 중 혁명이 발생하며 전선에서 이탈하였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인해 로노프 왕조가 무너졌으며, 이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산주의 국가로 변했다.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독일과 강화 조약을 맺으며 동부전선에서 철수하였고, 그 대가로 서부 영토를 독일과 그 동맹에게 할양했다. 하지만 독일패전하며 조약은 효력을 잃었고, 이후 러시아 내전이 발생하면서 공산 정권의 기반이 확되었다. 전쟁 후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으며, 서방 국가들은 소련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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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전쟁의 패배인해 해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8년 붕괴하며 오스트리, 헝가리, 체코슬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의 독립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이는 이후 동유럽 지역에서 민족 간 갈등초래하 요인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 전쟁 후 연합국점령을 받으며, 1920년 세브르 조약으로 영토 분할되었으나, 터키 독립전쟁을 통해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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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전쟁에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었으나, 기대했던 영토 확장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 런던 조약을 통해 약속받은 일부 영토확보하였지만, 달마티아 연안 지역을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하며 "배신당한 승리"라 불만이 커졌다. 이러한 불만은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고,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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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쟁 동안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독일의 태평양 지역 식민지를 점령하였고,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며 세력을 확장했다. 또한 1919년 국제 연맹에서 인종 평등 조항을 제안하였으나, 이는 서방 국가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국제적인 발언권을 강화하였으나, 이후 미국과 영국과의 해군력 경쟁이 심화되면서 태평양 지역에서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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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차 대전의 종전은 단순한 군사적 승패를 넘어 국제 사회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후 베르사유 체제를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었지만, 이는 패전국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며 향후 국제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유럽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와 인플레이션 문제에 직면했고, 이는 결국 1929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파시즘이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씨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