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47 vs r48 | ||
|---|---|---|
| ... | ... | |
| 57 | 57 | *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
| 58 | 58 | * '''대전통편'''을 편찬하였다. |
| 59 | 59 | == 평가 == |
| 60 | 왕 - 의정부(대신) - 삼사(대간)로 대표되는 조선의 전통적인 통치 구조는 태조 그리고 정도전이 기반을 다지고 이어 세종과 문종이 열심히 가꾸고 완성한 체제였다. 이러한 왕 - 의정부 - 삼사로 대표되는 삼각 상호 견제 체제는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의 빈번한 대옥사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선조 이후로는 무수한 사화의 숙청이 일어났으며, 선조, 효종, 현종 시절 때나 작동한 시기였지, 숙종 이후 본격화된 환국 정치에서 알 수 있듯 이후의 대부분은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노론, 소론, 시파, 벽파 할 것 없이 왕의 전제왕권 강화를 위해 숙청의 대상이 되면서 조정에 피바람이 난무했고, 이는 오히려 조선의 합리적인 통치 체계를 망가뜨리는 행위가 되었다. | |
| 60 | 왕 - 의정부(대신) - 삼사(대간)로 대표되는 조선의 전통적인 통치 구조는 태조 그리고 정도전이 기반을 다지고 이어 세종과 문종이 열심히 가꾸고 완성한 체제였다. 이러한 왕 - 의정부 - 삼사로 대표되는 삼각 상호 견제 체제는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의 빈번한 대옥사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선조 이후로는 무수한 사화의 숙청이 일어났으며, [[선조(조선)]], [[효종]], 현종 시절 때나 작동한 시기였지, 숙종 이후 본격화된 환국 정치에서 알 수 있듯 이후의 대부분은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노론, 소론, 시파, 벽파 할 것 없이 왕의 전제왕권 강화를 위해 숙청의 대상이 되면서 조정에 피바람이 난무했고, 이는 오히려 조선의 합리적인 통치 체계를 망가뜨리는 행위가 되었다. | |
| 61 | 61 | |
| 62 | 62 | 그래서 영조는 이러한 피를 부르는 숙청보다 온건책인 탕평책을 실시해 각 대간들 간의 강경파인 준노와 준소를 배제하고 온건파인 완노와 완소를 키워서 조정에 대한 견제력을 약화시키고 전제왕권을 강화했다. 하지만 영조는 재위 중후반부에 그 자신의 심각한 권력욕으로 이러한 쌍거호대와 탕평의 도를 무시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척신들을 등용해 조정의 당파를 억업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풍산 홍씨로 대표되는 척신 세력의 발호와 전횡이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정조는 집권 초반에 영조 시기의 강력한 외척 세력인 풍산 홍씨와 즉위를 위해 도왔던 경주 김씨 세력을 몰아내서 외척과 관련이 없는 신하들을 등용시켜 강력한 척신 세력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인척중심 등용과 측근 홍국영에게 권력을 너무 몰아주어 훗날 세도정치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홍국영이 특정인들만 요직에 앉히고 인사권을 휘둘러 전횡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정조는 홍국영 세력을 밀어내고 준론 탕평을 펼쳤으며, 이는 국왕 - 신료 간의 삼각 상호 견제 체제를 통해 돌아가는 조선의 전통적인 통치 구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
| 63 | 63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