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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99 | [[조선]]에서 올린 묘호는 '정종(正宗)'이므로 《정조실록》의 원제 역시 '정종대왕실록'이다. 비록 훗날 대한제국 시기에 황제로 재추존되어 '정조'로 묘호가 바뀌었지만 실록명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제2대 임금인 정종(定宗)과는 한자가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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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대한제국을 연 고종 때 3대조인 양증조부로서 묘호가 '''조(祖)'''로 격상되고 __선황제(宣皇帝)__로 추존되었으며 | |
| 101 | 대한제국을 연 고종 때 3대조인 양증조부로서 묘호가 '''조(祖)'''로 격상되고 __선황제(宣皇帝)__로 추존되었으며 존호가 더해져 최종적으로 '정조 선황제'가 되었다. 흔히 사극에서 세도정치기의 사람이 '정조대왕'이라고 일컫는 장면이 많은데 '정조(正祖)'라는 묘호는 1897년(광무 원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격상된 후에 생긴 묘호이므로 원래대로라면 '정종대왕'이라고 해야 맞지만 2대 정종과 헷갈릴 수 있어 일부러 '정조대왕'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야 할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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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실제로 정조는 사후 '정조대왕'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사후 '조선'에서는 '정종대왕'으로 불리다가 [[대한제국]]이 건국되면서 | |
| 103 | 실제로 정조는 사후 '정조대왕'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사후 '조선'에서는 '정종대왕'으로 불리다가 [[대한제국]]이 건국되면서 황제로 추존받으며 묘호가 바뀌어 '정조 선황제'가 되었기 때문. 정조의 묘호가 조선의 '조(祖)' 남발과 도매금으로 엮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묘호가 '정조'로 바뀐 것은 대한제국 건국 당시, 고종황제의 3대조 자격으로 추숭된 것이므로 조 남발과는 관계 없는 종법상 합당한 추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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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정조의 휘인 '祘'은 '셈할 산(算)'자와 같은 음으로 읽기 때문에 흔히 '산'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 |
| 105 | 정조의 휘인 '祘'은 '셈할 산(算)'자와 같은 음으로 읽기 때문에 흔히 '산'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백과사전도 '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조 당대에 정조가 직접 편찬한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의 〈전운옥편(全韻玉篇)〉을 보면 발음이 '셩'(현대 한국어 '성')이라고 되어 있으며 여기에 어휘(御諱)라는 주석도 달려있다. 제목인 '규장전운' 앞에 붙은 '어정(御定)'은 임금이 정한 것이라는 의미이니 이 발음 사전은 다름아닌 당시의 군주인 정조의 명령에 의해 편찬이 시작된 것이며 정조 본인이 직접 감수까지 한 결과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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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 또한 일제강점기 때 지석영의 《자전석요(字典釋要)》라는 한자 사전에서 이 글자의 음을 '셩'이라고 표기한 이유로 정조의 휘를 '산'이 아니라 이중모음의 단모음화를 감안하더라도 '성'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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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결론적으로 현대 | |
| 109 | 결론적으로 현대 옥편에서 저 글자를 '산'이라고 표기해 놨기 때문에 흔히 '이산'이라고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 글자를 '산'이라 읽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 논란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정조 즉위 당시까지만 해도 '산'이라고 읽었으나 즉위 20년째인 1796년(정조 20년)에 '산'의 발음을 '셩(성)'으로 고쳤다는 결론이 나왔다. 초기에 '祘' 이 글자를 '산'으로 발음했을 것이란 것을 짐작케 해주는 내용이 《정조실록》에 있으며 이후 발음이 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내용 역시 《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76년(정조 원년)에는 분명 '산'으로 읽고 있는데 1800년(정조 24년)에는 '성'으로 읽고 있으므로 중간에 발음이 바뀌었을 것이란걸 짐작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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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피휘의 전례로 보건데 전국의 '이산'이나 '~리산' 지명을 갈아치우다 너무 많아서 결국 그냥 왕 이름 쪽의 발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1980년대까지는 정조의 이름을 '이성'으로 알았다가 '이산'으로 고쳤는데 이제 결론이 위와 같아졌다는 것. 또한 선대인 영조 대의 운서에 동자 관계인 '算'자에 '어휘(御諱)'라는 내용이 있어서 이 주장에 근거를 실어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원래 규장전운의 해당 자리에 있던 '渻'자를 쓰던 약봉 서성(徐渻)이 자손이 매우 많아 그를 부러워하여 그의 이름과 같은 발음으로 채워 넣은 것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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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4 | >군주로서 사명감이 투철했던 정조는 진정한 위민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높은 이상도 가지고 있었다. 제2의 [[세종(조선)|세종]]이라 할 만큼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군왕. 그래서 그의 짧은 생애가[* 물론 상대적인 것으로, 정조의 집권 기간은 절대치로 보면 짧지 않다.] 더욱 안타깝지만, 과연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그는 진정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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