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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 150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정조 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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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 152 |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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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 승하하기 2년 전인 1798년(정조 22년) 다시 새로운 호를 지었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무척 길고도 독특한 호였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1만 개의 개울을 비추듯이, 자신의 다스림이 일부 특권 계층이 아닌 만백성에게 두루 혜택이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다른 호와는 달리 정조는 '''만천명월주인옹'''에 담은 자신의 간절한 뜻과 의지를 조정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까지 지어 발표했다. 글은 [[창덕궁]] 후원 폄우사 옆 존덕정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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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 * 정조와 | |
| 155 | * 정조와 의빈 성씨의 장남인 문효세자의 세자 책봉 때, 청나라 황실은 문효세자의 장수를 기원하는 미얀마산 옥불을 선물했다고 한다. 정조는 이 옥불을 보관하기 위해 승가사를 중건했으나, 오늘날 그 옥불은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여 알 수 없다.[[http://v.media.daum.net/v/20161230161602710|관련 기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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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 157 | * 시력이 나빠 [[안경]]을 애용하기도 했다. 즉위한 지 23년째 해([[1799년]])부터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썼다는 기록이 《[[정조실록]]》에 있다. 다만 본인도 공식석상에서는 쓰기가 부담스러웠는지 다음과 같은 언급을 남겼다.[* 이후 1년 뒤인 [[1800년]](정조 24년)에도 비슷한 언급을 한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는데, 내심 안경을 쓰고 업무를 보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을 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정조는 승하한다.] |
| 158 | 158 | > "'''나의 시력이 점점 이전보다 못해져서 경전의 문자는 안경이 아니면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안경은 2백 년 이후 처음 있는 물건이므로 이것을 쓰고 조정에서 국사를 처결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요즘 일기 등 문서를 상고해 볼 일이 있었는데, 역시 마음대로 훑어보기가 어려웠다. 이는 예사로운 눈병이 아니어서, 깊은 생각을 한다거나 복잡한 일이 있을 경우 어김없이 이상이 생겨 등골의 태양경(太陽經)과 좌우 옆구리에 횃불이 타는 듯한 열기가 있는데, 이것이 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간혹 시험삼아 불을 때지 않은 온돌바닥에 누워 있으면 몸의 열기로 바닥까지 차츰 따뜻해지므로 처음에는 조금 시원한 것 같아도 나중에는 또 견디기가 어려우니, 이는 전부 태양경의 울화가 팽배해 있는 결과로서 나의 학문의 힘이 깊지 못해 의지의 힘이 혈기(血氣)를 제어하지 못한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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