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9 vs r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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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 113 | == 평가 == |
| 114 | 114 | >군주로서 사명감이 투철했던 정조는 진정한 위민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높은 이상도 가지고 있었다. 제2의 세종이라 할 만큼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군왕. 그래서 그의 짧은 생애가[* 물론 상대적인 것으로, 정조의 집권 기간은 절대치로 보면 짧지 않다.] 더욱 안타깝지만, 과연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그는 진정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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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6권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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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 |
| 118 |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영의정 심환지와의 비밀 편지 속에서 그의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 정조가 죽자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기의 경직된 반동 정치는 [[조선]]을 일제의 [[일제강점기|식민지 처지]]로 몰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영조·정조 대의 짧은 황금기를[* 물론 상대적인 것으로, 영정조 집권기는 다 합치면 무려 76년이나 되긴 한다.] 내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짧은 막간은 정조의 통치 스타일 때문이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지시하는 '헤드십', 이른바 카리스마 콤플렉스가 잉태한 추락이었다.[* 정조를 성인으로 존경했던 정약용도 정조의 정책에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참고로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규장각, 초계문신, 장용영의 존재 이유를 모두 부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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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 120 | >'''영산대학교 배병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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