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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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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태생으로,[* [[합천군]]에서 '새천년생명의 숲'의 이름을 '[[일해공원|'''일해'''공원]]'으로 바꾼 것은 전두환의 연고지가 합천군이기 때문이다. 본래 선대의 [[집성촌]]은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인데, 전두환의 증조부 전석주(全錫注) 때에 율곡면 내천리로 이주했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1643630|#]]] 형제는 원래 6남 5녀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셋째 형 전기환과 본인, 그리고 남동생 [[전경환]]과 누이들뿐으로 총 3남 5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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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태생으로,[* [[합천군]]에서 '새천년생명의 숲'의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바꾼 것은 전두환의 연고지가 합천군이기 때문이다. 본래 선대의 집성촌은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인데, 전두환의 증조부 전석주(全錫注) 때에 율곡면 내천리로 이주했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1643630|#]]] 형제는 원래 6남 5녀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셋째 형 전기환과 본인, 그리고 남동생 [[전경환]]과 누이들뿐으로 총 3남 5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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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부모와 형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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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전상우]]^^(全相禹, 1893 ~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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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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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LYGhlI_2b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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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하자마자 [[연좌제]]를 폐지하고, [[야간통행금지]], [[심야 영업]] 금지령을 해제했다. 이후 야간통행금지는 잠시 부활했다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개정안을 공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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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하자마자 [[연좌제]]를 폐지하고, [[야간통행금지]], 심야 영업 금지령을 해제했다. 이후 야간통행금지는 잠시 부활했다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개정안을 공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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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과 동시에 전직 대통령 [[박정희]]를 홀대하는 조치를 하였다. [[박근혜]]의 회고에 따르면, 5공 시절에는 아버지 추도식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이런 조치는 훗날 자신도 당하는데 절친이자 심복인 노태우에게 [[백담사]] 유배를 당하게 된다. 아무튼 자기 정권의 정당성과 색깔을 국민들에게 어필하고자 겉으로만 그렇게 한 것일 뿐, [[12.12 군사반란]]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던 [[김종필]]이 [[양김]]을 견제할 목적으로 박정희와 유신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이를 패륜적으로 받아들여 쿠데타 멤버에서 배제했을 정도로 [[하나회|자신들]]을 챙겨주고 비호해주며 키워준 박정희를 당연히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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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두번째 취임은 언론을 상당히 활발하게 사용한 정치적인 사례였다. 어차피 [[체육관 선거|간접선거]]라 결과는 뻔했지만, 그래도 구색이라도 맞춰야 했기 때문에 당시 개표생중계 방송을 KBS에서 했고, 초대형 스튜디오를 만들어 전광판으로 실시간 현황을 보였다. 지금과 다른 점은, 명목상 후보가 다수인데도(...) 후보별로 있는 게 아니라 항목이 <찬성>과 <반대> 밖에 없었다는 점. 반대는 겨우 9%나 넘을까 했다. 그밖에 당시 2채널에서 하던 오락 프로그램 100분쇼에서도 전두환 대통령의 축하와 지지로 이루어진 특집 방송을 했었고, 당시 유아동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들이 전두환 대통령 찬양 일색의 멘트를 날렸다. 게다가 취임 전날에는 취임 경축 전야제라고 해서, [[장충체육관]]에서 밤새 공연했고 이를 생중계했다. 전형적인 독재 국가에서 보이는 프로파간다의 극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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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취임 후 [[허문도]]가 주장하는 [[3S정책]]을 시행했다. 스포츠(Sports), 성 개방(Sex), 영상 산업 진흥(Screen)을 3S 정책이라 불렀는데, 이는 한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에 맞춰 [[프로야구]] 및 [[K리그]] 등 프로스포츠가 출범했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였으며, 컬러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컬러TV 방송은 미국에서는 60년대부터 보편적이었고 국내에서도 1970년대에 이미 방송기술 및 수상기 제작기술을 다 갖췄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사치라는 명목으로 컬러TV 수상기 시판을 금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영화 검열 완화, 야간통행금지 폐지, 두발 및 [[교복]]자율화[* 대학 교복자율화는 즉각적으로 정착되었지만 중고등학교 교복자율화는 교복보다 사복을 입는 것이 가격이 비싸서 생활비를 증가시킨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와 선생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1986년에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을 다시 입히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이후 교복 부활이 대세가 되어서 결국 노태우 정권 말기 즈음이 되면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교복을 다시 입히게 되었다. 덧붙여 두발단속도 하나둘씩 부활한 것은 덤이었다.]를 실시하여 국민들이 가진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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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취임 후 허문도가 주장하는 3S정책을 시행했다. 스포츠(Sports), 성 개방(Sex), 영상 산업 진흥(Screen)을 3S 정책이라 불렀는데, 이는 한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에 맞춰 [[프로야구]] 및 [[K리그]] 등 프로스포츠가 출범했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였으며, 컬러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컬러TV 방송은 미국에서는 60년대부터 보편적이었고 국내에서도 1970년대에 이미 방송기술 및 수상기 제작기술을 다 갖췄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사치라는 명목으로 컬러TV 수상기 시판을 금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영화 검열 완화, 야간통행금지 폐지, 두발 및 [[교복]]자율화[* 대학 교복자율화는 즉각적으로 정착되었지만 중고등학교 교복자율화는 교복보다 사복을 입는 것이 가격이 비싸서 생활비를 증가시킨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와 선생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1986년에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을 다시 입히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이후 교복 부활이 대세가 되어서 결국 노태우 정권 말기 즈음이 되면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교복을 다시 입히게 되었다. 덧붙여 두발단속도 하나둘씩 부활한 것은 덤이었다.]를 실시하여 국민들이 가진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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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70년대 후반들어서는 고교평준화가 진행되면서 풍선효과로 대학 입시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 블루칼라가 일반적이었던 시대라지만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자식들을 노동조건이 열악한 블루칼라 대신 상대적으로 급여를 더 많이 받은 사무직에 취직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전두환 정부는 [[과외]]를 폐지하는 강압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인 엘리트화를 전두환은 추구하였고, 청소년 시절에 대학 입시로 자살하는 일이 이때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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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대학은 거의 매일 전투 상태였다. 전두환 정부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할 엄두를 못내도록 [[학원안정법 파동|학원안정법]]을 제정하고 [[녹화사업(비밀 공작)|녹화사업]]을 실시했으며,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전까지 학내에 정보형사와 경찰 [[프락치]]가 상주하였고 거의 매일 화염병과 최루탄이 오가는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도 [[사수대]]라는 민병조직을 만들어 냉병기 훈련을 하고 폭력시위에 앞장세웠으며 그 절정이 [[동의대 사태]]와 [[10.28 건국대학교 항쟁]]이었다. 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세계적 이벤트에 대해서도 학생권에서는 국민들, 특히 도시빈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올림픽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상당히 반발했었다. 당시 방송국에서는 이들을 '좌경의식분자'[* 쉽게 말해 [[빨갱이]]라는 뜻이다.]라면서 한창 내리까는 프로파간다를 많이 보도했었다. 그래서 장노년층들에게 학생운동권 출신의 선입견이 많이 안 좋은 것도 그 까닭이다. 학원, 과외 폐지는 전두환이 퇴임한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 때 현실성이 없다는 문제로 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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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대학은 거의 매일 전투 상태였다. 전두환 정부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할 엄두를 못내도록 [[학원안정법 파동|학원안정법]]을 제정하고 녹화사업을 실시했으며,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전까지 학내에 정보형사와 경찰 [[프락치]]가 상주하였고 거의 매일 화염병과 최루탄이 오가는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도 [[사수대]]라는 민병조직을 만들어 냉병기 훈련을 하고 폭력시위에 앞장세웠으며 그 절정이 [[동의대 사태]]와 [[10.28 건국대학교 항쟁]]이었다. 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세계적 이벤트에 대해서도 학생권에서는 국민들, 특히 도시빈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올림픽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상당히 반발했었다. 당시 방송국에서는 이들을 '좌경의식분자'[* 쉽게 말해 [[빨갱이]]라는 뜻이다.]라면서 한창 내리까는 프로파간다를 많이 보도했었다. 그래서 장노년층들에게 학생운동권 출신의 선입견이 많이 안 좋은 것도 그 까닭이다. 학원, 과외 폐지는 전두환이 퇴임한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 때 현실성이 없다는 문제로 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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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집권 직후 [[록히드 마틴]]과 [[F-16]] 도입 계획을 체결하였고, 전두환 집권을 좋지 않게 보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TV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전두환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반미감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1983년 11월 전두환은 한국을 공식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핵개발 계획중지를 약속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추진한 미사일, 핵 등 자주 국방 계획은 전두환 집권과 함께 폐기되었고, 훗날 노태우 정부는 미사일 설계도까지 전부 없어졌다며 한탄했다. 노태우 시절에 군이 전작권 전환 추진을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은 이 시기의 경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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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탄압을 방관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한국군의 지휘권은 미국에 있었는데, "어떻게 군대가 이동하여 광주에서 발포하고 학살을 저지를수 있냐?"는 것. 그 당시 매우 심각한 논쟁 거리였다. 또한 그 당시는 [[유교]]문화가 사회 저변에 아직 뿌리 깊던 시대라,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은 대국(大國) 미국이 자신들을 도우러 올 것이라 실제로 믿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한국의 무기 도입을 감사해하며 전두환과 웃으며 악수하고 전두환을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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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2년대로부터 20여 년이 넘게 경과함으로써 자연스레 산업 고도화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집권기에 이르면 [[중화학공업]]이 한국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직전 시대에 터졌던 오일쇼크의 극복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하여 중화학공업 내 체질개선을 꾀하는 한편, [[김재익]]을 등용하여 1945년이래 40년 가까이 지속된 높은 물가상승률을 재임 기간 동안 한 자릿수로 떨어뜨렸다. 덕분에 1983년에는 [[중진국]] 중에서도 안정권에 들어섰고,[* 오늘날로 치면 2010년대 후반 이후 [[중국]]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1987년에는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을 넘겼다. 그러나 성장해 가는 경제 규모에 비해 연간 3천 시간에 달하는 과중한 노동 시간 및 열악한 노동 환경 등 노동자들의 인권은 그대로였으며, 6.29 선언 직후 그간 내내 억눌려있던 노동자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본격화된 이 목소리들은 후임 노태우 정권 때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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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2년대로부터 20여 년이 넘게 경과함으로써 자연스레 산업 고도화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집권기에 이르면 [[중화학공업]]이 한국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직전 시대에 터졌던 오일쇼크의 극복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하여 중화학공업 내 체질개선을 꾀하는 한편, [[김재익]]을 등용하여 1945년이래 40년 가까이 지속된 높은 물가상승률을 재임 기간 동안 한 자릿수로 떨어뜨렸다. 덕분에 1983년에는 중진국 중에서도 안정권에 들어섰고,[* 오늘날로 치면 2010년대 후반 이후 [[중국]]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1987년에는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을 넘겼다. 그러나 성장해 가는 경제 규모에 비해 연간 3천 시간에 달하는 과중한 노동 시간 및 열악한 노동 환경 등 노동자들의 인권은 그대로였으며, 6.29 선언 직후 그간 내내 억눌려있던 노동자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본격화된 이 목소리들은 후임 노태우 정권 때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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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얀마]] 방문 때, [[북한]] 스파이의 표적이 되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가 일어났으나 그 시각에 현장에 없어 휘말리지 않았다.[* 다만 전두환이 사고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 다행인데, 당시 대한민국은 '''[[하나회]]'''의 영향력이 컸던지라, 까딱했다면 또 군사반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전두환의 악행에 대한 비판 여론도 '''북한에 살해당한 순국자''' 여론에 뜸해지는 것은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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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의 투쟁, 경제 성장에 걸맞지 않는 노동 인권으로 [[민주화]] 요구는 거세져 갔다. 그리고 이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반인륜적 사건사고가 터졌다. 사회의 불만은 더욱 가중되어 갔고 결국 개헌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민정당의 의원내각제 고수로 인해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전두환은 다음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로 다음 대선은 대통령 간선제로 하고 개헌 논의는 그 이후로 미룬다는 내용의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국민들이 [[6월 항쟁]]으로 들고일어나자, 결국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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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본인은 연임 없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고 제5공화국 헌법 상 대통령의 임기도 7년[* 7년이라는 기간은 [[샤를 드골]]의 [[프랑스 제5공화국]]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다만 드골의 프랑스는 연임이 가능했다.] 단임으로 명시해 두었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었다. 1986년 개헌 논의 당시 민정당이 들고 나왔던 의원내각제[* 전두환이 민정당 총수로 취임 후 국회의원 공천권을 가지며 막후 권력을 행사하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정파 혹은 정당의 독재노선을 꾀한 것으로도 보인다.]나 전임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전두환이 노태우를 허수아비로 앉힌 채 상왕 노릇을 하려 했다는 정황으로 꼽힌다. 그러나 막상 [[노태우]]가 집권하고서 전두환 색채를 지속적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지웠고, 3당 합당을 통해서 여권을 장악하게 될 [[김영삼]]의 등장으로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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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과 구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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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5공 청문회]]가 열리자 전두환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산을 사회에 반환하겠다는 인터뷰를 남긴 채 11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 들어가 2년 1개월여 간 칩거하게 된다. 청문회는 5공 시절 은폐되었던 전두환의 전횡을 낱낱이 파헤쳐 단죄하는 게 목표였지만, 정작 전두환을 구속시키지는 않고[* 당시 대통령 [[노태우]]부터가 5공의 핵심 가담자였고 전두환과 세트로 얽혀있어서, 전 정권 심판하려다 현 대통령까지 잡혀들어갈 게 뻔했다.] 일가친척들만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다만 이러한 행보로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이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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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이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12.12사태의 당사자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22명이 전두환을 고발하였으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시효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두환은 1995년 12월 3일 전격 구속된다.[* 노태우는 비자금이 폭로되면서 그 이전인 11월 16일 구속되었다.] 죄목은 반란수괴 · 반란모의참여 · 반란중요임무종사 · 불법진퇴 ·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 상관살해 · 상관살해미수 · 초병살해 · 내란수괴 · 내란모의참여 · 내란중요임무종사 · 내란목적살인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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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이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12.12사태의 당사자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22명이 전두환을 고발하였으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시효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두환은 1995년 12월 3일 전격 구속된다.[* 노태우는 비자금이 폭로되면서 그 이전인 11월 16일 구속되었다.] 죄목은 반란수괴 · 반란모의참여 · 반란중요임무종사 · 불법진퇴 ·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 상관살해 · 상관살해미수 · 초병살해 · 내란수괴 · 내란모의참여 · 내란중요임무종사 · 내란목적살인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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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더 이상 진상 조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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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JHW-lU4VX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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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알츠하이머]] 투병 중임을 주장해 왔지만, 2019년 11월 8일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전두환이 [[홍천군]]의 한 골프장에서 시원하게 골프를 치고, 거동과 의사소통이 원활한 신체건강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다시 시끌시끌해지고 있다. 이미 법원출석 당일 90살 먹은 노인이 몰린 인파를 제치는 모습으로 "알츠하이머는 구라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번 영상이 나오며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었다.[* 단 손자 전우원의 증언이 나옴에 따라 당시 이미 중증 알츠하이머였음이 확인되었다. 2015년부터 손자의 얼굴을 간혹 알아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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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알츠하이머]] 투병 중임을 주장해 왔지만, 2019년 11월 8일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전두환이 [[홍천군]]의 한 골프장에서 시원하게 골프를 치고, 거동과 의사소통이 원활한 신체건강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다시 시끌시끌해지고 있다. 이미 법원출석 당일 90살 먹은 노인이 몰린 인파를 제치는 모습으로 "알츠하이머는 구라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번 영상이 나오며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었다.[* 단 손자 전우원의 증언이 나옴에 따라 당시 이미 중증 알츠하이머였음이 확인되었다. 2015년부터 손자의 얼굴을 간혹 알아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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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RUaVz1s6h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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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2일'''에는 [[최세창]], [[정호용]] 등 쿠데타 주역들,[* 중환자인지라 칩거하던 [[노태우]]와,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 모인 듯 하다. 다만 노태우는 2019년경부터 5.18 유족에게 사죄하는 쪽으로 입장을 굳힌 것으로 보여, 여기 참가한 나머지 쿠데타 주역들과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본인은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어디 못 나가는 상황이어서 아들 [[노재헌]] 씨가 사죄에 대신 참여했다. 다들 전 前 대통령을 각하라고 높여 부르며 윗사람 대우를 했고, 정호용 씨만 '두환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전두환과 정호용은 육사 동기인데다가 5공 내내 요직을 시킬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라서 가능한 듯.] 그리고 [[김장환]] 목사 내외와 함께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인당 20만원씩 하는 호화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코코넛 [[제비집]], 양등심 [[탕수육]] [[샥스핀]], 와인 등이 포함된 고가의 메뉴이다. [[불도장]]을 세트와는 별개로 주문하기는 했으나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필 12.12 쿠테타 40주년이 되는 날 옛 부하들과 모였다는 점에서 영상을 촬영한 임한솔 부대표는 만찬장을 나오는 전두환에게 쿠테타기념회가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전두환은 단순 친목회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임 부대표는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이 줄곧 큰 목소리로 대화를 주도했으며, [[각하(호칭)|각하]] 소리까지 나왔다"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은 반성 없는 뻔뻔한 태도에 경악하여 비난성명을 내고 여론도 꾀병으로 법원을 농락하는 전두환을 제대로 법정에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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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2일'''에는 [[최세창]], [[정호용]] 등 쿠데타 주역들,[* 중환자인지라 칩거하던 [[노태우]]와,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 모인 듯 하다. 다만 노태우는 2019년경부터 5.18 유족에게 사죄하는 쪽으로 입장을 굳힌 것으로 보여, 여기 참가한 나머지 쿠데타 주역들과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본인은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어디 못 나가는 상황이어서 아들 [[노재헌]] 씨가 사죄에 대신 참여했다. 다들 전 前 대통령을 각하라고 높여 부르며 윗사람 대우를 했고, 정호용 씨만 '두환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전두환과 정호용은 육사 동기인데다가 5공 내내 요직을 시킬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라서 가능한 듯.] 그리고 [[김장환]] 목사 내외와 함께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인당 20만원씩 하는 호화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코코넛 [[제비집]], 양등심 [[탕수육]] [[샥스핀]], 와인 등이 포함된 고가의 메뉴이다. [[불도장]]을 세트와는 별개로 주문하기는 했으나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필 12.12 쿠테타 40주년이 되는 날 옛 부하들과 모였다는 점에서 영상을 촬영한 임한솔 부대표는 만찬장을 나오는 전두환에게 쿠테타기념회가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전두환은 단순 친목회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임 부대표는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이 줄곧 큰 목소리로 대화를 주도했으며, 각하 소리까지 나왔다"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은 반성 없는 뻔뻔한 태도에 경악하여 비난성명을 내고 여론도 꾀병으로 법원을 농락하는 전두환을 제대로 법정에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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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재판 참여를 위해 광주 법원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10월 5일. 검찰은 전두환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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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ddd><tablewidth=600>{{{#!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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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8월 9일]]의 모습.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격히 인상이 바뀌었다.[br]그리고 이 모습은 미디어에 노출된 전두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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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이가 90세인지라 이제 와서 노쇠하고 수척해지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평소 강골에다가 젊었을 때부터 술담배를[* 말년에는 둘 다 끊었는데, 담배의 경우 1997년 출소하고 나서부터 바로 끊었다고 하며 술은 언제부터였는지는 불명이다.] 좀 한 것을 빼면 건강관리를 상당히 잘 해 온 탓에 노쇠화의 진행이 늦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하였을 때 나이 대비 극도로 정정하던 얼마 전과 달리[* 전두환 본인이 건강 관리를 굉장히 잘해서인지, 당장 [[2019년]]까지만 해도 80대 후반 노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건강이 악화된 것은 자기가 가기 싫어했던 [[광주지방법원]]에 갔다오면서 느낀 [[치욕]]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게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여느 90세 노인처럼 수척해져 건강에 이상이 온 것으로 추정되었고, 돌아온 뒤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2021년]] [[8월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이완구]] 전 총리도 이 병으로 사망했으며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도 이 병의 영향으로 사망했는데, 그만큼 무시무시한 병이다. 한 마디로 뼈를 파고드는 병.]에 걸렸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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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이가 90세인지라 이제 와서 노쇠하고 수척해지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평소 강골에다가 젊었을 때부터 술담배를[* 말년에는 둘 다 끊었는데, 담배의 경우 1997년 출소하고 나서부터 바로 끊었다고 하며 술은 언제부터였는지는 불명이다.] 좀 한 것을 빼면 건강관리를 상당히 잘 해 온 탓에 노쇠화의 진행이 늦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하였을 때 나이 대비 극도로 정정하던 얼마 전과 달리[* 전두환 본인이 건강 관리를 굉장히 잘해서인지, 당장 [[2019년]]까지만 해도 80대 후반 노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건강이 악화된 것은 자기가 가기 싫어했던 [[광주지방법원]]에 갔다오면서 느낀 치욕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게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여느 90세 노인처럼 수척해져 건강에 이상이 온 것으로 추정되었고, 돌아온 뒤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2021년]] [[8월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이완구]] 전 총리도 이 병으로 사망했으며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도 이 병의 영향으로 사망했는데, 그만큼 무시무시한 병이다. 한 마디로 뼈를 파고드는 병.]에 걸렸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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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전두환은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은 것이 맞다고 한다. 다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0004|고령의 전 전 대통령이 항암치료를 받기 어려워 대증요법으로 치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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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오]] 국민의힘 고문은 조문을 다녀갔다. 생전에 한 일에 대해 역사적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https://www.sedaily.com/NewsVIew/22U5486PSX|#]] 양 거대 정당 대선 후보들이 조문을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32847|KBS 라디오]] 참고로 이 고문은 5공화국 시절 두 번 투옥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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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명(정치인)|여명]]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애도의 뜻을 밝혔다. [[https://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262635517300344&id=10000661782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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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 [[주호영]] 의원, [[김진태]] 전 의원, [[윤상현(정치인)|윤상현]] 의원[* [[전두환]]의 전 사위다.] 등 개인 자격으로 조문을 한 정치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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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합천군수인 [[문준희(정치인)|문준희]]가 합천군 [[일해공원]]에 무단으로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여 논란이 되었다. [[https://youtu.be/QBy8XBLn3ZI|뉴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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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이 자신들의 뿌리이지, [[전두환]]과는 딱히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를 거치며 [[민정계]] 정치인들은 [[하나회]] 숙청과 [[역사바로세우기]]로 인해 급격히 몰락했다.[* 주요 정당들의 중앙당사에는 자신들이 기리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걸어놓는다. 가령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국민의힘]] 중앙당사 회의실에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의 사진은 있지만 [[전두환]]의 사진은 없다. 원래는 [[이승만]], [[박정희]]의 사진만 있었지만 [[자유한국당]] 시절 [[홍준표]] 대표가 [[김영삼]]의 사진도 걸었다. 물론 [[상도동계]] 직계인 [[정병국]] 의원은 [[김영삼]]과 [[박정희]]의 관계를 거론하며 반발했다. 일단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현재 국민의힘의 역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직간접적으로 [[김영삼]]과 가까운 중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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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합천군수인 [[문준희(정치인)|문준희]]가 합천군 일해공원에 무단으로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여 논란이 되었다. [[https://youtu.be/QBy8XBLn3ZI|뉴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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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이 자신들의 뿌리이지, [[전두환]]과는 딱히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를 거치며 [[민정계]] 정치인들은 [[하나회]] 숙청과 역사바로세우기로 인해 급격히 몰락했다.[* 주요 정당들의 중앙당사에는 자신들이 기리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걸어놓는다. 가령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국민의힘]] 중앙당사 회의실에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의 사진은 있지만 [[전두환]]의 사진은 없다. 원래는 [[이승만]], [[박정희]]의 사진만 있었지만 [[자유한국당]] 시절 [[홍준표]] 대표가 [[김영삼]]의 사진도 걸었다. 물론 [[상도동계]] 직계인 [[정병국]] 의원은 [[김영삼]]과 [[박정희]]의 관계를 거론하며 반발했다. 일단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현재 국민의힘의 역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직간접적으로 [[김영삼]]과 가까운 중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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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민의힘]] 소속 중진들 대다수가 [[김영삼]][* [[김영삼]]은 [[박정희]]보다 [[전두환]]을 더 싫어했다. [[민정계]]를 [[호랑이]]에 비유하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며 [[전두환]], [[노태우]] 위주의 [[민정계]]를 숙청하고, [[하나회]]를 해체했다. 오히려 [[민정계]] 중에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해 [[DJP연합]] 당시 [[김대중]]에게 협조한 이들이 꽤 많다.] 혹은 [[상도동계]]나 [[민주계]] 정치인들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김영삼]], [[이회창]] 등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정치인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당시 [[민정계]]가 강한 [[대경권]]에서 가장 외면받은 정당인만큼 개혁적 성향이 강했다.[* 실제로 [[문민정부]] 들어 치러진 전국단위 공직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자유당]](민자당) 간판으로 치른 마지막 선거가 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 민자당 [[조해녕]] 후보가 '''무소속 후보 2명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에게 밀려 4위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포항시장을 [[민주당(1991년)|민주당]]에 내주기도 했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이 6공화국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서 승리하는 가운데서도 '''대구에서 자민련에게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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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민의힘]] 중진들은 신한국당 시절 전후부터 정치를 시작한 경우가 많다. [[김영삼]]에 의해 쫓겨난 [[민정계]] 의원 중 일부는 자민련에서 활동했다. 참고로 [[민정계]]의 완전 해체는 2006년 자민련 해산이다. 이때 [[한나라당]]에 자민련의 당원들은 일괄적으로 합류했으나 당 재산은 완전히 귀속되지 않았기에 현재 국민의힘은 전두환 관련 세력과는 개념적으로는 단절되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정의당]]보다 [[민주공화당]]을 계승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박근혜]]도 [[한나라당]] 의원 시절에 당의 뿌리는 3공부터 이어져 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020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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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대외적 노력과 이론적인 내용과는 달리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일부 국민들은 민정당을 [[국민의힘]]의 뿌리로 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국민의힘은 신군부 세력이 창설한 [[민주정의당]]의 재산은 아직도 유산으로 넘겨받아 사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전남도당 건물도 원래 [[민주정의당]] 당사였으나, [[김종인]] 전 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2021년에 매각하고 이사를 갔다. 물론 국민의힘 대구시당, 경북도당 건물은 민정당 당사였지만 매각되지 않았다. 부산시당, 강원도당, 경기도당, 전북도당 역시 [[민주정의당]]을 승계하면서 함께 넘겨받은 당 재산이며, 충북도당과 경남도당은 [[민주자유당]]을 승계하면서 함께 넘겨 받은 건물들이다.[* 즉 경제적 자산은 계승하면서도 정치적 부채는 피하고자 하는 이율배반적 성격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전두환이 구설에 오르거나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5.18 관련 막말]]이 나오면 [[국민의힘]]의 주류 세력도 같이 엮여서 여러 곤란을 겪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 전두환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친박계]]와 같이 [[국민의힘]]에서도 [[극우|굉장히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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