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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vs 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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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반역자다. [[체육관 선거|선거를 치르지 않고]] 대통령에 올랐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12.12 군사반란|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대통령도 아니며, 그 비극을 국민들이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인간으로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5.18 민주화운동/학살|자국 국민을 그렇게 수백 명을 죽일 수 있나]]. 우리 역사에 길이길이 크게 기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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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영삼은 전두환뿐만 아니라 [[이승만]], [[이명박]]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그중에서도 전두환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두환은 단순히 정치적 정적이나 라이벌 수준이 아니라 절대악에 가까울 정도로 김영삼을 핍박했다. 실제로 당시 김영삼의 정치적 동료였던 [[김대중]]은 사형 선고를 받아 사실상 정치 생명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으며, 김영삼은 목숨만 살려놓았지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손발을 다 끊어놓은 상태였다. 그 무렵 김영삼이 김대중을 만나러 가기 위해 전두환 정부가 심어놓은 전경들을 밀어내려다 실패하고 일갈하는 장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어 있다. [[https://youtu.be/V0b45mn-FyI|영상 보기]]][* 이와 대비되게 김영삼은 전두환의 일생의 동지였던 [[노태우]]를 전두환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노태우는 그래도 직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이었고 대통령 시기에도 김영삼과 꽤 가깝게 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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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개인을 넘어 [[전두환 정부]]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이유는, 전두환이 7년 6개월간의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벌인 행적들의 후유증은 퇴임 후 40년 가까이 지난 [[2020년대]] 현재에도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상처와 고질병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상의 일부 네티즌들을 제외하면, 온도 차이는 있겠지만 성향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극우]] 성향인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인사들조차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대놓고 전두환을 '위대한 지도자'라는 식으로 미화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당연히 주류 보수 세력에게도 전두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쁘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계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내에서 온건 보수의 뿌리인 [[상도동계|김영삼계]]와는 완전히 상극이며, [[친박]]으로 대표되는 강경 보수 계파도 [[박정희]]의 계승을 내세우지 전두환은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지지하는 노년층의 전두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박정희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이며, 그 중 일부는 전두환이 박정희의 비호를 받고 성장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박정희와 전두환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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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극우 세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에게 부정적인 평가만 받는 이유는 크게 보면 일단 최소한의 명분도 없는[* [[5.16 군사정변]]은 사회 혼란 수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 당시에는 [[5.16 군사정변/반응|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는데]], [[12.12 군사반란]]은 그조차 전무했다. 이 때문에 5.16 군사정변은 [[문민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5.16 군사혁명'이라고 불렸지만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 정부 시절에도''' '12.12 군사혁명'이라 불리기는커녕 '12.12 사태'라고만 언급되었다.] [[12.12 군사반란|두 차례]]의 [[5.17 내란|쿠데타]]를 일으키고, 유권자들에 의해 제대로 된 선거[*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간선제]] 방식이었다.]로 뽑힌 경력이 없지만 민주 국가의 수장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참칭했으며, 무엇보다 집권 과정에서 [[시민군|독재에 저항하는 자국민]]에 대한 [[5.18 민주화운동/학살|대규모의 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3.15 부정선거]]라는 사기를 치고 [[6.25 전쟁]]과 정권 말기 [[3.15 의거]] 당시 [[김주열]] 열사가 세상을 뜬 일로 인해 까이는 [[이승만]]이나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정희]]도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승만은 4번의 당선 중 처음 1번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에 의한 정당한 [[간접 선거|간선제]], 다음 2번은 [[직접 선거|직선제]]로 정당하게 뽑혔고 마지막은 [[3.15 부정선거|부정이 많았던 직선제]]여서 취소가 됐다. 박정희도 5번의 당선 중 앞의 3번은 직선제로 뽑혔으며, 나머지 2번은 [[통일주체국민회의|비민주적인 간선제]]를 이용해서 뽑혔다. 반면 전두환은 2번 당선되었는데 둘 다 비민주적인 간선제였다.] 적어도 상당 부분의 임기 동안은 겉보기로라도 민주주의를 내세우기는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장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과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을 [[비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전두환은[* 1985년 극초반까지 대한민국은 [[민주정의당]]과 [[구색정당|관제야당]]만 허용된 '''사실상 [[일당제]] 국가였다.'''] 정통성과 정당성이 모두 결여된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대통령이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에서 [[간접 선거|간선제]]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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