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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도 전두환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이자 역사적 실패작'''으로 가르치고 있다.[* [[청와대]]에 있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대통령 초상화]]나 [[청남대]]에 설치되어있는 전직 대통령 동상 등 전두환에 대한 미술품들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고, 실제로 청남대에서는 전두환 동상 철거를 논의하기도" 했었지만 최종적으로 철거는 안하고 대신 [[노태우]]와 함께 '내란 혐의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는 문구가 붙었다.] 심지어 [[2010년대]]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일베저장소]]나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극우]] 성향 갤러리의 유저들조차 전두환에 대한 진지한 찬양은 하지 않는다. 이들이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은 단순히 [[전라도|호남]] 지방에 대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맹목적인 혐오에서 비롯되었거나]],[* 이러한 점에서 이승만의 친일파 등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어그로|현실에서 하지 못할 말을 인터넷 상에서 내뱉음으로써]] 나름의 재미를 느끼려는 목적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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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물론 [[김재익]] 경제수석을 중용하여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다져진 경제 기반과 [[3저 호황]]을 토대로 경제 최전성기를 달렸으며,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 유신 시기의 과도한 중앙집권적 체제와 통금 시간 해제나 두발, 교복 자율화 같은 극도로 보수화된 검열 정책을 일부 완화하는[* 그러나 독재 체제를 완화했지만 [[간첩]] 조작 사건과 정치범 수감자들은 오히려 유신 독재 시절보다 더 많았을뿐더러 [[국제그룹 해체 사건]]([[부산광역시|부산]]의 경제는 이로 인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으니 부산 시민들 입장에서는 '''부산의 경제를 무너뜨린 주범'''인 셈이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등 유신 시기의 박정희 정부도 기겁할 기괴한 사건들을 일으켰다.] 등 공이 어느정도 있지만, 1980년대에 다른 친서방 독재 국가들은 대부분 민주화되거나 점진적으로 통제가 완화되었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례로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는 전두환의 집권 초기인 1983년에 종결되었고, [[대만]]에도 민주화의 서광이 조금씩 비쳤으며,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마저 집권 초기에 비해서는 통제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 다만 공산권, 친공산권 국가들은 저때까지도 전부 독재 국가였는데, 물론 이들 중에서 [[소련]]과 척을 진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국가들도 전원 독재 국가였다. [[제3세계]]의 리더격이던 [[유고슬라비아]]도 조금 덜 독재했을 뿐이다. 한편 독재 구도는 바뀌지 않았으나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그보다 정도가 훨씬 덜한 [[베트남]]의 군사적 개입으로 실각했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과 같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을 유지했으며,[* [[박정희 정부]] 시기가 전 세계적으로 독재자들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한 독재자들이 즐비했던 점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4공화국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이라고는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독재자들에 비하면 온건한 축에 들어간다.] 경제 성장의 성과도 박정희 정부가 쌓아놓은 토대와 3저 호황이라는 요인이 컸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박정희가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자란 끝에 전두환이 집권한 시기에 완전히 익은 열매를 맺은 격이다. 실제로 [[대통령과 밥솥]]에서도 "박정희가 지은 밥을 전두환이 부하들과 함께 맛있게 먹어치웠다"는 내용이 있다.] 검열 정책의 완화도 [[우민화 정책]]의 일원이라서 의도가 불순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에 업적을 남긴 폭군이나 독재자들도 과오가 너무 크면 그 업적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는 언급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흔하다.[* 일례로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수하르토]]의 경우 경제 개발 면에서는 많은 공적을 남겼으나, 악행이 너무 커 일반적으로 반공권 최악의 학살자라는 점만 부각되고 있다. '과오가 엄청나게 크지만 업적도 엄청나게 커서' 과오가 업적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경우에도, 사망 직후에는 후임인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처참하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이후 [[소련 해체|소련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 재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면서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냉전]]이 끝난 이후의 일이며, 심지어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은 지금도 '스탈린'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대숙청]], [[굴라그]], [[카틴 학살]], [[홀로도모르]] 같은 흉흉한 사건들이다.] 특히 저 수준의 독재를 한국이 중진국 지위를 확립한 후에 저질렀다는 것과[* 한국의 1인당 GDP는 1983년 세계 평균의 80%를 넘겼고, 1984년 90%를 넘기며 세계 평균급에 이르렀으며, 1987년 세계 평균을 넘겼다. 오늘날로 치면 [[튀르키예]], [[중국]],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이 [[선진국/대한민국|선진국]][* 한국은 이미 2002년, [[IMF 외환위기]]를 논외로 치면 '''1994년''' 선진국에 진입했다.]에 진입하고도 한참이나 더 지난 뒤에야 편히 죽었다는 것[* 전두환을 제외하면 고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후에 죽은 '''자국민을 학살한'''([[리콴유]] 같은 예외도 있으므로) 독재자는 [[그리스]]의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밖에 없고, 더구나 파파도풀로스는 말년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지내다 옥사하며 죗값을 제대로 치렀고 죽은 것도 21세기 이전(1999년)이기에 전두환보다는 임팩트가 매우 옅을 수 밖에 없다.] 역시 전두환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 |
| 21 | 물론 [[김재익]] 경제수석을 중용하여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다져진 경제 기반과 [[3저 호황]]을 토대로 경제 최전성기를 달렸으며,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 유신 시기의 과도한 중앙집권적 체제와 통금 시간 해제나 두발, 교복 자율화 같은 극도로 보수화된 검열 정책을 일부 완화하는[* 그러나 독재 체제를 완화했지만 [[간첩]] 조작 사건과 정치범 수감자들은 오히려 유신 독재 시절보다 더 많았을뿐더러 [[국제그룹 해체 사건]]([[부산광역시|부산]]의 경제는 이로 인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으니 부산 시민들 입장에서는 '''부산의 경제를 무너뜨린 주범'''인 셈이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등 유신 시기의 박정희 정부도 기겁할 기괴한 사건들을 일으켰다.] 등 공이 어느 정도 있지만, 1980년대에 다른 친서방 독재 국가들은 대부분 민주화되거나 점진적으로 통제가 완화되었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례로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는 전두환의 집권 초기인 1983년에 종결되었고, [[대만]]에도 민주화의 서광이 조금씩 비쳤으며,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마저 집권 초기에 비해서는 통제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 다만 공산권, 친공산권 국가들은 저때까지도 전부 독재 국가였는데, 물론 이들 중에서 [[소련]]과 척을 진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국가들도 전원 독재 국가였다. [[제3세계]]의 리더격이던 [[유고슬라비아]]도 조금 덜 독재했을 뿐이다. 한편 독재 구도는 바뀌지 않았으나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그보다 정도가 훨씬 덜한 [[베트남]]의 군사적 개입으로 실각했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과 같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을 유지했으며,[* [[박정희 정부]] 시기가 전 세계적으로 독재자들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한 독재자들이 즐비했던 점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4공화국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이라고는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독재자들에 비하면 온건한 축에 들어간다.] 경제 성장의 성과도 박정희 정부가 쌓아놓은 토대와 3저 호황이라는 요인이 컸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박정희가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자란 끝에 전두환이 집권한 시기에 완전히 익은 열매를 맺은 격이다. 실제로 [[대통령과 밥솥]]에서도 "박정희가 지은 밥을 전두환이 부하들과 함께 맛있게 먹어치웠다"는 내용이 있다.] 검열 정책의 완화도 [[우민화 정책]]의 일원이라서 의도가 불순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에 업적을 남긴 폭군이나 독재자들도 과오가 너무 크면 그 업적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는 언급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흔하다.[* 일례로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수하르토]]의 경우 경제 개발 면에서는 많은 공적을 남겼으나, 악행이 너무 커 일반적으로 반공권 최악의 학살자라는 점만 부각되고 있다. '과오가 엄청나게 크지만 업적도 엄청나게 커서' 과오가 업적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경우에도, 사망 직후에는 후임인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처참하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이후 [[소련 해체|소련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 재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면서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냉전]]이 끝난 이후의 일이며, 심지어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은 지금도 '스탈린'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대숙청]], [[굴라그]], [[카틴 학살]], [[홀로도모르]] 같은 흉흉한 사건들이다.] 특히 저 수준의 독재를 한국이 중진국 지위를 확립한 후에 저질렀다는 것과[* 한국의 1인당 GDP는 1983년 세계 평균의 80%를 넘겼고, 1984년 90%를 넘기며 세계 평균급에 이르렀으며, 1987년 세계 평균을 넘겼다. 오늘날로 치면 [[튀르키예]], [[중국]],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이 [[선진국/대한민국|선진국]][* 한국은 이미 2002년, [[IMF 외환위기]]를 논외로 치면 '''1994년''' 선진국에 진입했다.]에 진입하고도 한참이나 더 지난 뒤에야 편히 죽었다는 것[* 전두환을 제외하면 고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후에 죽은 '''자국민을 학살한'''([[리콴유]] 같은 예외도 있으므로) 독재자는 [[그리스]]의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밖에 없고, 더구나 파파도풀로스는 말년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지내다 옥사하며 죗값을 제대로 치렀고 죽은 것도 21세기 이전(1999년)이기에 전두환보다는 임팩트가 매우 옅을 수 밖에 없다.] 역시 전두환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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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3 | 더군다나 박정희의 사례처럼 경제 호황기의 대통령은 보통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말처럼 아무리 욕을 먹어도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은 것까지 감안하면 한국 역사상 최고 호황기에 집권했는데도 인기는커녕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기록말살형]] 수준의 지탄만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다.[* 이것은 그만큼 당시 전두환 정부가 부정축재를 비롯해 고압적이고 파국적인 행태를 벌여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 호황기에 집권하면서 인권 탄압을 자행한 세계의 독재자들 중 전두환은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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