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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13 | 본래 칠묘는 자신의 조상들을 모시는 신주이지만 유유는 열조부인 [[유응]]까지만 모시고 나머지 한 자리엔 자신의 황후를 봉안하였다. 이는 중국사상 최초로 전례가 없었던, 즉 예법에 안맞는 행위였기에 후대의 비웃음을 샀다. 왕명성(王鳴盛)은 유유 자신이 죽고 난 후의 묘호를 태조(太祖)로 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나 유유의 묘호는 고조(高祖)로 정해졌다. 무제가 죽고 그 위패가 신주에 봉안된 후부터 장애친은 더이상 주신(主神)으로 모셔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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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그녀의 아버지는 장준(臧俊)이고 [[자(이름)|자]]는 선예(宣刈)이며 동진의 군공조(郡功曹)를 지냈 | |
| 15 | 그녀의 아버지는 장준(臧俊)이고 [[자(이름)|자]]는 선예(宣刈)이며 동진의 군공조(郡功曹)를 지냈다. 장준의 부친은 장왕(臧汪)으로 자는 산보(山甫)이며 동진의 상서량을 지냈다. | |
| 16 | 16 | [[분류:칠묘 배향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