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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비교)

r12 vs 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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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건 뒤에 조조가 직접 서주를 정벌하러 오자 먼길을 오느라 지친 틈을 타서 야습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유비도 "너 지난번에 유대 잡을 때도 머리 제법 쓰더니만 오늘 계책도 병법에 맞는구나."라고 평가한다. 비록 이 계책은 실패로 끝났으나 이건 계략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갑자기 바람이 불며 조조군의 깃발대을 꺾어버리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서 순욱에게 묻자 이건 적이 야습을 할 징조라며 방비하게 한 것이다. 연의 저자도 하늘이 조조를 도왔다는식으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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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파에서 병사들에게 빗자루로 땅을 쓸고 말꼬리에도 빗자루를 달아서 수풀뒤에서 먼지를 일으키게 하여 대군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본인은 장판파에서 사자후를 발하여 [[하후걸]]을 말 위에서 떨어트리는 등 조조와 부하들에게 겁을 줘 쫓아버린다. 이때 연의에서는 조조가 과거 관우가 잠시 자신의 휘하에 있을때 했던 자신의 아우 장비는 적장의 수급을 취하는것을 주머니속 물건 꺼내듯한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정말 그럴 놈이로구나!" 라고 질색한다. 막상 그래놓고 후환이 염려된답시고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조조가 다리를 끊은걸 보니 대단한 병력은 있지 않다고 판단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둔덕에 마침 관우가 강하에서 지원군을 이끌고 와서 조조의 추격을 쉽게 물리친다. 조조가 다리가 멀쩡하게 유지 될 때만해도 정말 대군이 있는건지 아니면 그저 허장성세(虛張聲勢)[* 실속이 없음에도 큰 소리 치거나 허세를 부린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인지를 의심하고 있었으나 장비가 다리를 부숴버린 시점에서 허장성세임을 확신했다. 다만 원작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부분은 장비의 지략보다는 용맹을 강조한 대목이다. 정사에서는 허세 없이 막아냈으니 용맹을 강조했고, 연의는 의병계를 썼으니 지략이 강조되었다는 서술을 나무위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연의에서 장비가 단순 고함소리만으로 하후걸을 낙마시키고 조조군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했다는 점만 봐도 강조된 것은 오히려 용맹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나중에 유비가 장비를 평가할 때에도 되도 않는 허세를 성공시킨 용맹은 대단했지만 마무리가 2% 부족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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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파에서 병사들에게 빗자루로 땅을 쓸고 말꼬리에도 빗자루를 달아서 수풀뒤에서 먼지를 일으키게 하여 대군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본인은 장판파에서 사자후를 발하여 [[하후걸]]을 말 위에서 떨어트리는 등 조조와 부하들에게 겁을 줘 쫓아버린다. 이때 연의에서는 조조가 과거 관우가 잠시 자신의 휘하에 있을 때 했던 자신의 아우 장비는 적장의 수급을 취하는것을 주머니속 물건 꺼내듯한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정말 그럴 놈이로구나!" 라고 질색한다. 막상 그래놓고 후환이 염려된답시고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조조가 다리를 끊은걸 보니 대단한 병력은 있지 않다고 판단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둔덕에 마침 관우가 강하에서 지원군을 이끌고 와서 조조의 추격을 쉽게 물리친다. 조조가 다리가 멀쩡하게 유지 될 때만해도 정말 대군이 있는건지 아니면 그저 허장성세(虛張聲勢)[* 실속이 없음에도 큰 소리 치거나 허세를 부린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인지를 의심하고 있었으나 장비가 다리를 부숴버린 시점에서 허장성세임을 확신했다. 다만 원작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부분은 장비의 지략보다는 용맹을 강조한 대목이다. 정사에서는 허세 없이 막아냈으니 용맹을 강조했고, 연의는 의병계를 썼으니 지략이 강조되었다는 서술을 나무위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연의에서 장비가 단순 고함소리만으로 하후걸을 낙마시키고 조조군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했다는 점만 봐도 강조된 것은 오히려 용맹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나중에 유비가 장비를 평가할 때에도 되도 않는 허세를 성공시킨 용맹은 대단했지만 마무리가 2% 부족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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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촉 점령 당시 엄안이 성 안에 틀어박혀 [[우주방어]]에 들어가자, 장비는 시일을 끌 수가 없어 샛길 기습을 계획한다. 샛길을 찾느라 공격이 들어오지 않자 의심을 품은 엄안은 장비의 진영으로 첩자를 보냈는데, 이 때 장비는 특유의 성질과 호령으로 첩자들이 듣고 착각에 빠지도록 일부러 계획을 누설한다. 이에 엄안은 역기습을 하기 위해 선봉에 선 장비를 보내고 군량이 있는 행렬의 중간을 공격한다. 그러나 앞서 지나간 장비는 [[카게무샤|그와 닮은 사람이 연기한 대역]]이었고, 행렬의 중간에 숨어있던 장비에게 공격을 당해 사로잡힌다. 이에 사로잡힌 엄안이 충의를 내세워 어서 자신을 죽이라면서 장비를 맹 비난하며 혼을 내자, 되려 흥분할줄 알았던 장비는 엄안의 밧줄을 풀어주고 기개와 충심에 탄복했다며 머리숙여 절을 하며 설득하여 결국 엄안을 등용시킨다. 그리고 이 엄안 등용은 [[신의 한 수]]가 되어 나머지 관문을 문자 그대로 하이패스로 통과 할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고[* 엄안이 관문마다 앞서서 "나조차도 유현덕께 항복 했거늘 너희가 감히 버티겠단거냐? 어서 문을 열고 항복하거라!" 식으로 회유하고 엄안의 높은 명성에 힘입어 엄안 장군께서 항복하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라 판단한 나머지 관문의 군사들도 줄줄이 항복한다.] 장비가 빠르게 유비를 지원하러 갈수 있었다. 심지어 같이 이동했던 제갈량과 그 외의 장수들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이 부분은 병사 한명을 장비와 같은 가짜 수염으로 분장시키고, 가짜 투구와 장팔사모로 변장시켜 이용했다. 이같은 전략으로 매우 빠르게 유비를 구하러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유비가 장비를 크게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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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10921000080_0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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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딩(正定)현 조자룡 사당에 있는 장비가 썼다는 비문 '장비입마명'의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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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화에 능했다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장비의 글이나 그림은 없다. 남북조 양나라 시기의 인물 [[도홍경]]의 <도검록(刀劍錄)>에는 신정후 촉대장이라고 도검에 쓴 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 장군직을 했던 장비가 스스로 촉대장이라고 할 리 없다는게 중론이다. 노필이 살피길 '익덕이 칼을 만들어 새겼으면, 마땅히 스스로 한장(漢將)이라고 적었을 테지, 필시 촉장(蜀將)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은, 몽산(濛山)에서 돌에 새기며 스스로 한장이라 썼으므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갈량이 처음 입촉해서 법률을 지을때 '한과'가 아닌 '촉과'로 지었다는 이유로 장비 역시 촉대장이라고 자칭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노필의 주장을 반박하는 설도 있지만, 촉과는 촉 자역을 다스리는 법이라는 의미에서 촉과라고 하는 것이지 유비의 정권 전체를 아우르는 법이 아니다.] 명나라 때 쓰여진 <태평청화> 등의 역사서에는 실제로 쓰촨성 류장(流江)현에서 장비가 절벽에 새긴 입마명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장비입마명(張飛立馬銘)> 또는 <팔몽마애명(八濛摩崖銘)>이라고 부른다. 청나라의 문학가 기효람은 '어찌 누가 글자를 절벽에 새길줄 알았겠는가 거기장군 장비가 직접 쓴 글씨였다.' 라고 하며 장비를 칭찬하였다. 이 서예는 단정하고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웠으며 호방하고 생동감이 넘쳤으며 힘이 넘치는 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편의 우수한 서예 작품 못지 않았다. 다만, 장비입마명은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입마명은 위작이며 장비는 미남이 아니다라는 글도 중국웹 상에 많이 퍼져있다. 일각에서는 실제 장비의 외모가 출중했다, 당대의 꽃미남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돌고 있는데, 딱히 근거는 없다. 애초에 장비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이 없고, 삼국지에서는 그저 '웅장위맹'하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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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화에 능했다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장비의 글이나 그림은 없다. 남북조 양나라 시기의 인물 [[도홍경]]의 <도검록(刀劍錄)>에는 신정후 촉대장이라고 도검에 쓴 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 장군직을 했던 장비가 스스로 촉대장이라고 할 리 없다는게 중론이다. 노필이 살피길 '익덕이 칼을 만들어 새겼으면, 마땅히 스스로 한장(漢將)이라고 적었을 테지, 필시 촉장(蜀將)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은, 몽산(濛山)에서 돌에 새기며 스스로 한장이라 썼으므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갈량이 처음 입촉해서 법률을 지을 때 '한과'가 아닌 '촉과'로 지었다는 이유로 장비 역시 촉대장이라고 자칭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노필의 주장을 반박하는 설도 있지만, 촉과는 촉 자역을 다스리는 법이라는 의미에서 촉과라고 하는 것이지 유비의 정권 전체를 아우르는 법이 아니다.] 명나라 때 쓰여진 <태평청화> 등의 역사서에는 실제로 쓰촨성 류장(流江)현에서 장비가 절벽에 새긴 입마명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장비입마명(張飛立馬銘)> 또는 <팔몽마애명(八濛摩崖銘)>이라고 부른다. 청나라의 문학가 기효람은 '어찌 누가 글자를 절벽에 새길줄 알았겠는가 거기장군 장비가 직접 쓴 글씨였다.' 라고 하며 장비를 칭찬하였다. 이 서예는 단정하고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웠으며 호방하고 생동감이 넘쳤으며 힘이 넘치는 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편의 우수한 서예 작품 못지 않았다. 다만, 장비입마명은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입마명은 위작이며 장비는 미남이 아니다라는 글도 중국웹 상에 많이 퍼져있다. 일각에서는 실제 장비의 외모가 출중했다, 당대의 꽃미남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돌고 있는데, 딱히 근거는 없다. 애초에 장비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이 없고, 삼국지에서는 그저 '웅장위맹'하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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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요리]] 중에선 장비가 만들었다는 장비우육이라는 요리도 있다. 다만 실제 장비가 만든거라고 볼 순 없고 후세에 덧붙인 것이다. 또 다른 관련 요리로는 쥔뚠쿼쿠이라고 자기가 쓰던 투구를 솥 대용으로 활용해 만들어먹었다는 전설이 붙은 페이스트리와 흡사한 튀김빵도 있다. 사천에는 취운랑(翠雲廊)이라는 곳도 있는데 고촉도(古蜀道)라는 옛 길에 속하는 검문촉도(劍門蜀道)의 일부구간으로서, 길가에 가로수 모양으로 3백리에 달하는 오래된 [[측백나무]]를 심어놓은 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뜻은 푸른 빛 구름 같은 측백나무 숲길, 이쯤 되겠다. 서로는 재동(梓潼), 북으로는 소화, 남으로는 랑중으로 이어지는 세갈래 길인데, 이 길은 장비가 만든것으로서 장비가 파서태수를 지낼 때 랑중에서 소화에 이르는 구간을 산을 깍아 석판대로를 만들고 길 양편으로 측백나무를 심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측백길은 군대 행군 뿐 아니라 상인들과 백성들도 다니기 편리했다. 그래서 이 길을 장비백(張飛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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