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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 171 | 정리하자면, '''장비는 천하에 위용을 떨친 용장이었으나 장수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사람으로서의 포용력이 부족해 결코 덕장이 될 수 없었고, 그것이 본인의 발목을 잡게 된 무장'''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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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 173 | == 기타 == |
| 174 | * 서민에게 친근한 이미지 덕분인지 [[삼국지]]가 [[연극]]으로 공연되기 시작하던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는 장비가 [[주인공]]이었으며, 현대에도 장비는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삼국지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장비가 관련된 민간 설화나 [[야사(역사)|야사]] 또한 굉장히 많은 편이다. 호즙주에 관련된 이야기[* [[방통]]이 뇌양현 현령으로 임명된 후 아무 업무도 하지 않고 놀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비가 감독관을 보내려 했는데, 뇌양현에 호즙주라는 명주가 있다는 걸 알고있던 장비가 자처해서 감독으로 떠난다. 당연히 뇌양현에 도착해 호즙주로 거하게 취하려고 술집부터 찾았지만 모든 술집에서 물을 타 밍밍한 호즙주를 팔고 있었는데, 방통이 애주가 장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 마을의 모든 주점에 장팔사모를 든 사내가 오거든 호즙주에 물을 타서 내놓으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 이후엔 연의의 그 이야기로 진행되며, 장비도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진짜 호즙주를 마시고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라든가, 적장과 지혜를 겨루기 위해 한 벙어리 문답[* 헌데 이런 부분은 [[착각물]] 스럽게 상대방이 진지한 질문을 던짐 - 장비는 상대적으로 유치한(시세를 논한건데 먹을거 얘기인줄 안다든가...) 질문으로 여김 - 장비가 대답함 - 그런데 상대방은 진지한 대답으로 착각 - 이하반복 - 상대방이 장비에게 놀라며 이야기 끝으로 흘러간다.] 등이 유명하다. | |
| 174 | * 서민에게 친근한 이미지 덕분인지 [[삼국지]]가 [[연극]]으로 공연되기 시작하던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는 장비가 [[주인공]]이었으며, 현대에도 장비는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삼국지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장비가 관련된 민간 설화나 [[야사(역사)|야사]] 또한 굉장히 많은 편이다. 호즙주에 관련된 이야기[* [[방통]]이 뇌양현 현령으로 임명된 후 아무 업무도 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비가 감독관을 보내려 했는데, 뇌양현에 호즙주라는 명주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장비가 자처해서 감독으로 떠난다. 당연히 뇌양현에 도착해 호즙주로 거하게 취하려고 술집부터 찾았지만 모든 술집에서 물을 타 밍밍한 호즙주를 팔고 있었는데, 방통이 애주가 장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 마을의 모든 주점에 장팔사모를 든 사내가 오거든 호즙주에 물을 타서 내놓으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 이후엔 연의의 그 이야기로 진행되며, 장비도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진짜 호즙주를 마시고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라든가, 적장과 지혜를 겨루기 위해 한 벙어리 문답[* 헌데 이런 부분은 [[착각물]] 스럽게 상대방이 진지한 질문을 던짐 - 장비는 상대적으로 유치한(시세를 논한건데 먹을거 얘기인줄 안다든가...) 질문으로 여김 - 장비가 대답함 - 그런데 상대방은 진지한 대답으로 착각 - 이하반복 - 상대방이 장비에게 놀라며 이야기 끝으로 흘러간다.] 등이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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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 | 176 | * 장비가 서화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설이 있는데, 명나라 탁이창(卓爾昌)의 <화수원전(畫髓元詮)>과 청나라 <역대화정록(曆代畫征綠)>에서는 장비를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탁주고루(涿州鼓樓)>의 북벽 상에 쓰인 <여와보천도(女媧補千圖)>와 장비의 고향부근 방수촌 만불각의 벽화에서는 모두 장비의 손재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청나라 때 <역대화기록(歷代畵記綠)>에 보면 ‘장비는 줘저우인으로 미인도를 잘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줘저우에서는 "줘저우 시내 고성(古城)의 성벽이나 이웃마을 팡수(房樹)촌의 만물각(萬佛閣)에 그려진 벽화는 장비의 서화 솜씨를 후대 사람들이 그대로 모방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또 장비는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13살 때 이미 [[춘추]]를 깨우치고 [[손자병법]]에 능했다고 한다. 원나라 오진의 <장익덕사(張益德詞)> 서문에서는 '관후가 풍자하여 말하길 장비는 문예에 더 소질이 있다고 하였다. 문과 무의 운치는 다르지만, 옛사람들은 항상 여유를 두었다. 창을 휘두르는 힘이 손목에 들어가 붓을 휘두르는데 위나라의 종요와 오나라의 황상의 실력도 이보다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1961년 류보경이 편집하고 북경출판사가 충판한 글자 배우기의 부록 <정해 서예명가의 약력과 이력>에서는 '중국서예가들은 문인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무장 중에서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있다. 장비와 [[악비]] 등이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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