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7 vs r18 | ||
|---|---|---|
| ... | ... | |
| 49 | 49 | 1576년 동부비호 권관으로 복무하며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1581년 종4품인 수군 만호가 되었으나 모함으로 좌천 되었고 다시 승진가도를 달리며 '''임진왜란 1년전''' 1591년 전라좌수사로 임명된다. |
| 50 | 50 | 이후 꾸준한 준비끝에 전쟁의 판도를 뒤엎는다. |
| 51 | 51 | === 임진왜란 === |
| 52 | 일본군이 침략해 왔다. 그러나 1592년 옥포,사천,등에서 연이어 승리해서 전황을 바꿀 '''한산도 대첩'''에서는 그 유명한 학인진 전법을 펼쳐 일본군을 거의다 죽이고 조선군은 | |
| 52 | 일본군이 침략해 왔다. 그러나 1592년 옥포,사천,당포등에서 연이어 승리해서 8월 14일, 전황을 바꿀 '''한산도 대첩'''에서는 그 유명한 학인진 전법을 펼쳐 일본군을 거의다 죽이고 조선군은 왜선 59척을 침몰 시키며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적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한산도에서 미역으로 7일을 연명하다 일본으로 귀환 했다. 이후 안골포에 추가로 섬멸 40척을 섬멸시키고 여수로 귀환 했다. | |
| 53 | 53 | |
| 54 | 8월말에는 부산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1593년2월6일에는 웅포에서 왜군을 쳤으나 이들이 성(왜성)을 쌓아서 예전보다는 큰 전과를 거두진 못했다. 7월 15일 전라좌수형을 한산도로 옮기고 8월 15일에는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된다. | |
| 55 | ||
| 56 | 1594년에는 왜선30척을 격파했다. 이후 서로 강화협상을 해서 아무일도 없다가 1597년 일본측이 협상을 깨고 정유재란이 일어난다. 거기다 더 막장인게 이순신의 수하인 김신국이 거짓모함을 하고 거짓으로 밝혀졌으나 이건 파직의 이유가 된다 또 원균이 조정에 명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하자 이순신을 2월26일 탄핵을 시킨다 그리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이 된다. 그러나 통제사가 된 원균 --이, 병신 (고운말)--은 칠천량에서 배를 12척만 남겨놓고[* 거북선도 이때 다 태워 먹는다.] 자기도 죽는다. | |
| 57 | ||
| 58 | 그렇게 이순신은 이일로 복직이 되었으나 모친인 변씨가 사망하자 매우 슬퍼했다.--ㅠ-- 어쨌든 조정에서는 해군 상태가 노답이자 육지에서 싸우라 명했으나 이때 남긴, 모르면 진짜 간첩인 말. | |
| 59 | ||
| 60 | >'''임진년부터 5·6년 간 적이 감히 호서와 호남으로 직공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을 누르고 있어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말미암아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은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
| 61 | ||
| 62 | 이순신은 다가올 해전을 깨부수기 위해 판옥선 한척을 하나더 건조해서 배를 13척으로 만들고 드디어 9월 16일, 명량에서 격전을 치룬다. 적선133척과 아군13척으로 좁은 지협인 울돌목에서 30여척 정도를 깨부수며 대승을 거둔다. | |
| 63 | ||
| 64 | 이후 제해권을 다시 장악해 수군을 빠르게 재건해 나갔고 자잘한 해전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 |
| 54 | 65 | === 사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