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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 164 | 용산역은 단순히 승객과 화물이 오고가는 역일뿐만 아니라 철도차량을 유치 및 정비하는 곳이기도 했다. [[경부선]]이 개통한 1905년 이래 이곳에는 철도 용산 공작반이라는 기관이 세워지고, 광대한 철도부지에 차량기지를 세워 기관차와 객차, 화차의 정비를 맡았다. 또한 인근에 일본군 기지가 있었기에 군용열차 및 군용화물도 많이 운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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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 === 남북분단으로 인한 역할 축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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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 | 광복 후에도 용산역의 역할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그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 |
| 178 | 광복 후에도 용산역의 역할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그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대륙으로 향하는 국제열차는 사라졌고, 여객 터미널로서의 위상은 [[서울역]]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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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 180 | [[6.25 전쟁]]을 전후해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는 파괴되었고[* 김태우.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718408|「한국전쟁기 미 공군에 의한 서울 폭격의 목적과 양상」]]. 서울학연구 제35호, 2009년. pp.273-304.], 여객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용산역은 단층 역사로 운영되었다. 이 때의 역사 규모는 현재는 물론 일제강점기 시절 용산역사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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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 182 | 1978년에 [[수도권 전철]] 전용 선상역사가 만들어져 기존 1층짜리 역사는 일반열차 역 전용이 되어 전철역이 분리되었으며, 일반열차 역은 1990년에 경부선 서울 - 구로 간 3복선화 부지에 포함됨에 따라 철거되어 일반열차 역무기능까지 전철역사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이 부지는 현재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경원선]]) 용산역 승강장으로 쓰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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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 | 이때 당시 용산역은 일반 여객보다는 군용 수송 및 화물역, 철도차량 정비로써의 역할이 더 많았다. 서울 | |
| 184 | 이때 당시 용산역은 일반 여객보다는 군용 수송 및 화물역, 철도차량 정비로써의 역할이 더 많았다. 서울우편집중국의 우편화물 및 신문용지, 특히 과거 각종 잡지 등 간행물 수송 그리고 각종 소화물 등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다양한 화물을 취급하는 철도물류터미널 기능을 했었고, 서울 주변역으로 가는 화물중계 역할을 하는 조차장 기능도 있어 용산을 드나드는 근거리 화물열차가 많았다. 그러나 점차 철도 화물수송이 축소되고 1984년에 오봉역이 만들어지면서 수도권 화물 수송 거점역이 옮겨가 용산역의 역할은 또 축소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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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 186 | 1호선 전철 역중 플랩식 행선기가 마지막으로 설치되어있던 역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2호선을 제외한 1,3,4호선 전철 역사에서 플랩식 행선기가 철거되고 모두 LED식으로 교체되었는데, 용산역 하행선 승강장에 남아있던 플랩식 행선기는 민자역사 개업 전인 2003년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수원~[[병점역|병점]]간 연장 개통 당시 병점행 행선지를 추가하기까지 했으나 2003년 말 민자역사가 완공되면서 철거되었다.[* [[https://blog.naver.com/7174dl/220599309088|관련 게시글]], 출처: 네이버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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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 196 | ||<bgcolor=#003da5> {{{#ffffff '''90년대 용산역에서 바라본 공중보행교와 터미널 상가의 모습'''}}} || |
| 197 | 1990년에는 터미널 상가 건물 내부에 서부역사가 완공되었다. 또한 용산역에서 이 서부역사까지 쭉 이어지는 공중보행교도 같이 완공되었다. 이 보행교가 당시에는 운임구역, 즉 승차권을 개찰기에 넣고 돈을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이는 기존 용산역의 승강장과 전철 역사를 잇는 육교를 단순히 연장한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쭉 이어진 보행교가 끝나는 터미널 상가 3층에는 개찰구와 매표소, 역무실 등의 간단한 역무시설이 생겼고 이를 서부역사라고 불렀다. 또한 엘리베이터 앞까지는 중간에 가게가 없이 대합실 용도로 쓰였다. 2004년에 민자역사가 개장하면서 보행교는 그대로 남았지만, 대합실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로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운임구역에서 제외되면서 돈을 내지 않고도 보행교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역사 자리는 컴퓨터 관련 가게로 메꿔지며 흔적이 사라졌다. 2014년에 터미널 상가가 철거되고 [[2017년]]에 | |
| 197 | 1990년에는 터미널 상가 건물 내부에 서부역사가 완공되었다. 또한 용산역에서 이 서부역사까지 쭉 이어지는 공중보행교도 같이 완공되었다. 이 보행교가 당시에는 운임구역, 즉 승차권을 개찰기에 넣고 돈을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이는 기존 용산역의 승강장과 전철 역사를 잇는 육교를 단순히 연장한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쭉 이어진 보행교가 끝나는 터미널 상가 3층에는 개찰구와 매표소, 역무실 등의 간단한 역무시설이 생겼고 이를 서부역사라고 불렀다. 또한 엘리베이터 앞까지는 중간에 가게가 없이 대합실 용도로 쓰였다. 2004년에 민자역사가 개장하면서 보행교는 그대로 남았지만, 대합실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로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운임구역에서 제외되면서 돈을 내지 않고도 보행교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역사 자리는 컴퓨터 관련 가게로 메꿔지며 흔적이 사라졌다. 2014년에 터미널 상가가 철거되고 [[2017년]]에 서울드래곤시티로 재건축되면서 3번 출구에 해당하는 공중보행교는 서울 드래곤 시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가 [[2023년]]에 기존 보행교를 철거하고 새로운 보행교를 건설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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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199 | === 민자역사 완공과 부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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