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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랴쿠지(비교)

r6 vs 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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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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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uby(延, ruby=えん)][ruby(暦, ruby=りゃく)][ruby(寺, ruby=じ)] / Enryakuji / 연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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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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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현]] [[오츠시]] [[히에이산]]에 위치한 [[절(불교)|사찰]]이며, 일본 [[https://www.tendai.or.jp/|천태종]]의 총본산(總本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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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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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88년에 작은 사찰로 창건되었으며, 822년부터 정식으로 승려를 배출하는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조금씩 타 종단의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자경단]] 목적으로 [[승병(일본)|승병]]을 양성했는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엔랴쿠지가 독립화된 무장 세력이 되었고, [[부정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에 엔랴쿠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되어 [[주지육림]]에 빠지고 민중을 괴롭혔다. 그러나 교토를 장악한 [[오다 노부나가]]에 밉보이게 되었는데, 스스로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변해버린 엔랴쿠지는 오우미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군벌]]이었고, 노부나가가 키나이로 진출하던 시절에는 북쪽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동쪽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동맹]] 상태였다. 단순히 노부나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 적대 관계였던 셈. 이를 계기로 노부나가가 민중의 여론을 등에 업고 1571년에 엔랴쿠지를 토벌하고 불태워버렸다. 엔랴쿠지가 불타자 엔랴쿠지에게 착취 당하던 민중들이 환호할 정도였으니 그 불교로 본분을 버린 댓가를 뼈져리게 치룬다.[* 반면에 혼간지의 켄뇨는 흉년시 백성들을 구휼하고 무상으로 백성들을 치료해주는 등 민심을 얻었기에 오다와 히데요시조차도 혼간지를 굴복시키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당시 다이묘들은 엔랴쿠지의 [[승병(일본)|승병]]들을 카모가와의 강물, 쌍륙의 주사위패와 함께 천하에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하나로 뽑았다. 일각에서는 엔랴쿠지를 공격한 일로 아케치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야사가 있으나 아케치가 엔랴쿠지 공격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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