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39 vs r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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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8 | 718 | |
| 719 | 719 | 또한,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란의 정예 요원들이 수없이 전사했고,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졌다. 하메네이는 승리를 선언했으나, 그것은 파괴된 시리아의 폐허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승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저항하면 승리한다"는 자신의 확신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이는 이후 대미 외교 및 핵 협상 과정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강경 노선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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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1 | === 이란 핵 합의 === | |
| 722 | 2010년대 초반, 이란은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적 고립에 직면해 있었다. 유엔 안보리의 잇따른 제재와 미국의 금융 봉쇄는 이란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고,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13년 온건 중도파인 [[하산 루하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필생의 숙적인 미국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도박'을 승인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를 뒤흔든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의 시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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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4 | 하메네이는 협상 시작 전, 보수 강경파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영웅적 유연성'이라는 교리를 발표했다. 이는 "레슬러가 기술을 걸기 위해 잠시 몸을 굽히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원칙(이슬람 혁명 정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해 전술적인 후퇴를 할 수 있다는 명분을 세운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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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6 | 하메네이는 "우리는 결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죄악(Fatwa)"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민간 핵 기술의 권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배수진을 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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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8 | 그는 협상팀인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에게 매우 까다로운 레드라인을 설정해 주었다. "협상은 하되, 미국의 본질적인 적대감을 잊지 말라"는 이중적인 메시지는 협상 기간 내내 서방 외교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 |
| 724 | 729 | |
| 730 | 2015년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종 합의가 임박했을 때 하메네이는 테헤란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으며 세부 조항을 점검했다. 특히 핵 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 범위와 제재 해제 시점을 두고 피 말리는 접전이 이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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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2 | 당시 하메네이는 국영 방송 연설을 통해 "모든 제재는 합의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압박하며, 협상장에 앉아 있는 자리프 장관의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처럼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미국 측 협상가인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이란 협상팀 뒤에는 더 완고한 결권자가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어, 이란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 |
| 733 | ||
| 734 | 마침내 2015년 7월 14일, 역사적인 핵 합의가 타결되었다. 이란은 농축 우라늄 재고의 98%를 제거하고 원심분리기 숫자를 대폭 줄이는 대신,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해제받기로 했다. | |
| 735 | ||
| 736 | 테헤란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춤을 추며 환호했지만, 하메네이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는 루하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수고했다"는 짧은 치하와 함께 "미국은 언제든 약속을 어길 수 있는 사탄의 무리임을 명심하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이 합의를 '서방과의 화해'가 아닌, '강요된 필요에 의한 일시적 휴전'으로 정의한 것이다. | |
| 737 | ||
| 738 | 협상 타결 이후 이란 내부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혁명수비대]]와 보수 신학자들은 "하메네이가 서구 세력에게 안보의 핵심을 팔아넘겼다"며 은밀히 불만을 표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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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0 | 이에 하메네이는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합의를 지지하면서도, 뒤로는 혁명수비대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승인하고 반미 구호를 강화했다. 이는 핵 합의로 인해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내부 단속이었다. | |
| 741 | ||
| 742 | >"우리는 핵 문제에 대해서만 대화했을 뿐, 다른 어떤 지역적 이슈나 양자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 2015년 9월 하메네이의 연설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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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4 | 핵 합의 이후 동결되었던 자금이 풀리고 해외 자본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미국의 금융 시스템 제한은 여전했다. 하메네이는 서구 자본에 의존하는 루하니 정부의 경제 모델을 비판하며 '저항 경제(Economy of Resistance)'를 주창했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 생산력을 극대화하여 제재에 견딜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 |
| 745 | ||
| 746 | 이 시기 하메네이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서구 브랜드의 진입을 철저히 차단하며 '문화적 침투'를 경계했다. 그는 JCPOA를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이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으며, 이는 훗날 [[트럼프 행정부]]의 합의 파기 이후 그가 "내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근거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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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8 | === 트럼프의 탈퇴와 '최대 압박' === | |
| 749 | 2015년 [[JCPOA]] 타결 당시 하메네이가 보였던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사탄"이라는 회의론은 불과 3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2018년 5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합의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재가동하자, 하메네이는 이를 자신의 예지력이 증명된 사건으로 규정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 |
| 750 | ||
| 751 | 트럼프의 탈퇴 선언 직후, 하메네이는 공식 연설에서 평소의 절제된 톤을 버리고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를 쏟아냈다. 그는 트럼프를 향해 "당신은 실수했다. 당신은 이란 민중을 해칠 수 없을 것이며, 당신이 죽어 육신이 쥐와 뱀의 먹이가 된 후에도 이슬람 공화국은 건재할 것"이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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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3 | 하메네이는 루하니 대통령과 자리프 외무장관 등 협상을 주도한 온건파들을 향해 "내가 뭐라고 했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정치적 우위를 점했다. 이는 이란 내 개혁파의 입지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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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5 | 미국이 떠난 자리를 메우려던 [[유럽연합]]에게도 냉소적이었다. 그는 "유럽 역시 미국의 눈치를 보며 시간만 끌 뿐"이라며, 핵 합의 유지를 위한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이 없다면 이란도 합의 이행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 |
| 756 | ||
| 757 | 하메네이는 미국의 경제적 목죄기에 맞서 '최대 저항'이라는 대항마를 내세웠다. 이는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도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공세적 방어 전략이었다. | |
| 758 | ||
| 759 | 하메네이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농도를 4.5%에서 20%, 나아가 60%까지 끌어올리도록 승인했다. 이는 핵무기 제조 직전 단계까지 기술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벼랑 끝 전술이었다. | |
| 760 | ||
| 761 |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나포 및 무인기 격추 사건이 빈번해졌다. 하메네이는 "우리 기름이 나가지 못한다면, 누구의 기름도 나갈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 |
| 762 | ||
| 763 | [[예멘 내전]]의 후티 반군, 이라크 내 친이란 밀리샤를 통한 비대칭 전력을 강화했다. 이는 미국이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중동 내 자산이 위협받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 |
| 764 | ||
| 765 |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이란 리알화의 가치는 폭락했고, 인플레이션은 40%를 상회했다. 하메네이는 이 위기를 '자립의 기회'로 포장했다. 그는 "우리가 국산품을 쓰고, 밀수와 부패를 근절한다면 제재는 오히려 이란 산업을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혁명수비대 계열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일반 서민들만 의약품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는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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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7 | 이 과정에서 발생한 2019년 유가 인상 반대 시위(소위 '피의 11월') 당시, 하메네이는 시위대를 '폭도'와 '외세의 끄나풀'로 규정하며 무자비한 진압을 승인했다. 그는 체제의 안정이 그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
| 768 | ||
| 769 | 2019년 6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트럼프의 메시지를 들고 테헤란을 방문했을 때, 하메네이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베를 면박 주었다. 그는 아베 앞에서 "나는 트럼프를 메시지를 주고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로 보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대답할 것이 없으며, 대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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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1 | 이는 하메네이 특유의 '자존심 외교'의 정점이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고통받을지언정, 종교 지도자로서 제국주의 세력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만큼은 절대 보일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장면은 이란 내 보수층에게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서방 세계에는 소통 불가능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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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3 | 하메네이는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이란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전략적 인내'를 주문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극에 달할수록 그는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미국"이라며 시간을 벌었다. | |
| 774 | ||
| 775 | 이 기간 동안 하메네이는 [[중국]]과의 25년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을 추진하며 '동방 정책(Look to the East)'으로의 외교 축 이동을 본격화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다극 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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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5 | 781 | === 최후 === |
| 726 | 782 |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고 바로 다음날인 [[3월 1일]], 미국과 이스라엘 측은 하메네이를 사살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란]] 정부는 그의 죽음을 완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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