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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 | [[분류:안동 김씨(후)]][[분류:김씨]][[분류:경상북도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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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다른 뜻, other1=김방경을 시조로 하는 김씨, rd1=구 안동 김씨)] | |
| 4 | 3 | [include(틀:역대 세도정치 집권자)] |
| 5 | 4 | [include(틀:조선의 역대 집권세력)] |
| 6 | 5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ece5b6><tablebgcolor=#1b0e64><bgcolor=#1b0e6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d0730, #1b0e64 20%, #1b0e64 80%, #0d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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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0 | || '''집성촌''' ||[[서울특별시]] [[종로구]][br][[경기도]] [[고양시]][br][[충청북도]] [[청원군]][br][[충청북도]] [[괴산군]][br][[충청북도]] [[음성군]][br][[충청남도]] [[논산군]][br][[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br][[경상북도]] [[안동시]][br][[경상북도]] [[의성군]][br][[경상북도]] [[예천군]] || |
| 12 | 11 | || '''인구''' ||47,702명 (2015년) '''인구의 0.096%'''[* 총인구 49,705,663명.][br]21,554명 (1985년) '''인구의 0.053%'''[* 총인구 40,419,652명.] || |
| 13 | 12 | || '''사이트''' ||[[http://www.andong-kim.co.kr/|안동김씨 안동화수회(安東金氏 安東花樹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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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13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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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5 | == 개요 == |
| 19 | 16 | [[고려]] 개국 공신인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며 공수부정 김습돈(金習敦)을 중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한국사의 대표적인 [[명문가|명문 벌열]] 중 하나이다. 본관은 [[경상북도|경북]] [[안동]]이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를 펼친 권력자들이 한성부 장동에서 집결되어 세칭을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도 하였다. |
| 20 | 17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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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27 | 926년([[경애왕]] 3년) [[김선평]](金宣平)은 고창의 [[성주(직위)|성주(城主)]]로 부임했고,930년([[태조(고려)|고려 태조]] 13년) [[왕건]](王建)을 돕기 위해서 군사들을 이끌고 고창군(高昌郡)에서 [[권행]](權幸)·[[장길]](張吉)과 함께 [[견훤]](甄萱)의 후백제군을 물리쳤다. 그 전공으로 [[개국공신|고려 개국공신]]인 대광(大匡) 작위를 받았다. 족보에 의하면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의 칭호를 받았으며 최고위 귀족 [[태사]](太師)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으며, 고창군(古昌郡)은 안동부(安東付)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현재 [[안동]](安東)은 김선평에 의해서 개칭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아부(亞父)라는 것은 고려의 황제 [[왕건]](王建)이 [[김선평]](金宣平) 태사를 존경해서 “아버지에 버금간다”라고 해서 버금 아([[亞]]), 아비 부([[父]])라고 한 것이다. 《[[고려사]]》 의하면 김선평을 스승처럼 따랐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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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지금도 안동에는 이들 3태사(太師) -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길(張吉)을 제향하는 태사묘(太師廟)가 남아 있으며, 약 1000년동안 金(김), 權(권), 張(장) 3姓(성)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신)안동김씨는 개국공신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내내 사환, 학문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향역(호장, 부호장, 호장정위)을 세습하는데 만족하였다. 심지어 세계마저 불완전하여 김선평과 김습돈 사이의 대수(약250년, 7~8대)를 확인할 수 없으며, 청음(淸陰) | |
| 29 | 지금도 안동에는 이들 3태사(太師) -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길(張吉)을 제향하는 태사묘(太師廟)가 남아 있으며, 약 1000년동안 金(김), 權(권), 張(장) 3姓(성)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신)안동김씨는 개국공신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내내 사환, 학문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향역(호장, 부호장, 호장정위)을 세습하는데 만족하였다. 심지어 세계마저 불완전하여 김선평과 김습돈 사이의 대수(약250년, 7~8대)를 확인할 수 없으며,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8대조 김득우(金得雨)이전은 산소의 위치도 알 길이 없다. 이는 같은 개국공신의 후손으로 고려후기부터 명문으로 성장한 안동권씨와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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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신안동김씨가 기가(起家)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청음의 8대조 김득우(金得雨)때였다. 그는 비록 높은 벼슬은 아니었지만 전농정(典農正)을 지냈으며, 풍산류씨 류난옥(柳蘭玉)의 손녀사위가 됨으로써 풍산류씨와의 세의(世誼 : 대대로 사귀어 온 정(情))를 확보하게 된다. 류난옥은 바로 [[선조(조선)|선조]]조에 영의정을 지낸 풍원부원군 서애(西厓) | |
| 31 | 신안동김씨가 기가(起家)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청음의 8대조 김득우(金得雨)때였다. 그는 비록 높은 벼슬은 아니었지만 전농정(典農正)을 지냈으며, 풍산류씨 류난옥(柳蘭玉)의 손녀사위가 됨으로써 풍산류씨와의 세의(世誼 : 대대로 사귀어 온 정(情))를 확보하게 된다. 류난옥은 바로 [[선조(조선)|선조]]조에 영의정을 지낸 풍원부원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8대조이다. 한편 김득우(金得雨, 1332~ ?)는 안동권씨 권희정(權希正)가문과의 혼인을 통해서도 가문의 입지를 더욱 신장하게 된다. 김득우는 권희정(權希正)의 딸을 외아들 김혁(金革)의 아내로 삼았는데, 권희정은 [[세종(조선)|세종]]조에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낸 권진(權軫)의 아버지였다. 더욱이 김득우는 권진을 사위로 삼음으로서 안동김씨와 안동권씨 사이에는 연혼, 중혼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 혼인은 안동김씨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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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당시만 하더라도 신안동김씨는 고려시대 이래로 단 한 명의 문과(대과) 급제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사위이기는 하지만 | |
| 33 | 당시만 하더라도 신안동김씨는 고려시대 이래로 단 한 명의 문과(대과) 급제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사위이기는 하지만 권진(權軫, 1357~1435)이 문과를 통해 정승(우의정)의 반열에 오름으로서 그 반사적 효과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통혼의 과정에서 김혁은 배상지(裵尙志), 이운후(李云候)와 동서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배상지(裵尙志, 1351~1414)는 고려말의 은사로서 서애 류성룡은 그를 두고 “상설처럼 맑고 옥처럼 정갈하며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고절을 지킨 선비”로 평가하였다. 그의 5세손 배상룡(裵尙龍)은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7세손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은 퇴계 [[이황]]의 고제(高弟 : 제자들 가운데서 학식과 품행이 특히 뛰어난 제자)로서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특히 배삼익의 계열은 조선후기 안동의 대표적인 명망가문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이운후(李云候)는 바로 퇴계 이황의 고조부로서 진성이씨 예안 입향조였다. 이처럼 안동김씨는 혼인을 통해 안동 굴지의 명가들과 연계하였는데, 이는 곧 문호의 신장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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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5 | === 조선 전기 === |
| 39 | 한편 신 안동 김씨는 김득우(金得雨), 김혁(金革), 김삼근(金三近) 대에 이르러 커다란 변화를 수반하게 되었다. 우선 김득우, 김혁 부자는 시조 이래 450년 세거지인 안동의 강정촌(江亭村, 현재 안동시 정상동 귀래정 부근)을 떠나 풍산현의 불정촌(佛頂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들의 풍산 이거는 처가이며 외가인 풍산류씨(豊山柳氏)의 경제적 기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풍산현 불정촌(안동시 풍산읍 하리리)도 안동김씨의 영원한 기반이 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김득우의 손자 | |
| 36 | 한편 신 안동 김씨는 김득우(金得雨), 김혁(金革), 김삼근(金三近) 대에 이르러 커다란 변화를 수반하게 되었다. 우선 김득우, 김혁 부자는 시조 이래 450년 세거지인 안동의 강정촌(江亭村, 현재 안동시 정상동 귀래정 부근)을 떠나 풍산현의 불정촌(佛頂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들의 풍산 이거는 처가이며 외가인 풍산류씨(豊山柳氏)의 경제적 기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풍산현 불정촌(안동시 풍산읍 하리리)도 안동김씨의 영원한 기반이 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김득우의 손자 김삼근(金三近, 1390~1465) 대에 이르러 인근의 소요산(素耀山)으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소요산은 풍산현의 치소와 5리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원래의 명칭은 금산촌(金山村=소산리)이었다. 김삼근의 입거를 계기로 풍산 소산은 안동김씨의 <백세터전>으로 자리하게 된다. 현재 안동에서는 이들을 <素山金氏>로 부르고 있으며 안동, 파주, 서울, 충청 등 경향 일대에 거주하는 신안동김씨 11개파 모두 소산에서 분파된 가문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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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김삼근이 안동부 풍산현 불정촌(풍산읍 하리리)에서 풍산현 소산리(금산촌)로 이주한 시기는 대략 1430년(세종 12년) 전후로 짐작된다. 이주와 동시에 제택(第宅 : 살림집과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건립하여 정착의 토대를 다지는 한편 자질(자식과 조카)들의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보였다. 이런 기반 위에서 (신)안동김씨는 무려 550년 만에 비로소 문과 합격자를 배출하게 된다. 김삼근에게는 | |
| 38 | 김삼근이 안동부 풍산현 불정촌(풍산읍 하리리)에서 풍산현 소산리(금산촌)로 이주한 시기는 대략 1430년(세종 12년) 전후로 짐작된다. 이주와 동시에 제택(第宅 : 살림집과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건립하여 정착의 토대를 다지는 한편 자질(자식과 조카)들의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보였다. 이런 기반 위에서 (신)안동김씨는 무려 550년 만에 비로소 문과 합격자를 배출하게 된다. 김삼근에게는 김계권(金係權), 김계행(金係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바로 차남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1447년(세종 29년) 17살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고 1480년(성종 11년) 50세의 고령으로 문과(文科)에 급제한 것이다. 김계행은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도승지, 사헌부 대사헌까지 올랐으며 청백(淸白)을 <傳家之至寶>로 삼아 향리에서는 보백선생(寶白先生)으로 칭송되었다. 말년에는 안동부(安東府) 길안(吉安) 묵계(墨溪)로 이주(첫째부인 이천서씨를 23세에 사별한후 24세때 의령남씨 사헌부장령 남상치의 차녀와 재혼하였다. 쌍청공 남상치는 사헌부지평 및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으며 도덕과 문장이 뛰어났다. [[계유정난]] 때 [[단종(조선)|단종]]이 폐위되자 한양에서 안동으로 낙향하여 길안 거묵역 - 거묵동, 묵촌, 묵계에 쌍청헌이란 정자를 지었는데 아들이 없어 후일 사위인 김계행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내외묘사를 당부했다. 남상치(南尙致)공의 조부는 의성군에 봉해지고 정당문학, 진현관 대제학을 역임한 보리공신 양정공 남좌시(南佐時)이며 부친은 좌명원종공신 상호군 남심(南深)이다.)하였는데, 후학들이 그의 학덕을 추모하여 이 곳에 묵계서원(墨溪書院)을 건립하였다. 그의 가계는 안동김씨 중에서도 보백당파(寶白堂派 또는 定獻公派)로 불리고 있으며, 후손 중 현달(顯達)한 인물로는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고제(高弟 : 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낸 구전 김중청(金中淸, 1567~1629 : 김계행의 5대손)을 들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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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김계행의 문과(대과)급제는 신안동김씨로서는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버지 | |
| 40 | 김계행의 문과(대과)급제는 신안동김씨로서는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버지 김삼근이 득성 이래 최초의 사마시(司馬試) 합격자였다면, 그는 최초의 문과(文科) 합격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안동김씨는 김계행을 통해 과거의 문턱을 넘음으로서 향반(鄕班)에서 점차 도반(道班), 국반(國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계행은 어디까지나 장동김씨(김삼근-김계권 계행-김영수-영 김번 순-김생해-대효 원효 김극효-상용 상준 상관 김상헌 상복-김광찬-수증 수흥 김수항-김창집 창협 창흡-김제겸-김달행-김이중-김조순-김좌근-병기)의 직계조상은 아니었다. 장동김씨(壯洞金氏)의 선대가 과거를 통해 출사하기까지는 이로부터 2대(김영, 김번 형제의 문과급제)를 더 기다려야 했다. 청음(김상헌)의 5대조 김계권(1410~1458)은 과거 출신이 아닌 관계로 벼슬이 한성부판관(종5품)에 그쳤지만 그는 예천권씨(醴泉權氏) 권맹손(權孟孫)의 사위가 됨으로써 자식들에게 출세의 길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권맹손(權孟孫, 1390~1456)은 1408년(태종 8년) 문과에 급제하고, 1429년(세종 11년)에는 문과중시(文科重試 : 승진시험)에도 급제한 수재였다. 특히 그는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으로서 세종조의 문병(文柄 : 學文과 文治상의권리)을 좌우하였으며,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 1388~1443)과 같은 문사와의 교유도 깊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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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한편, 김계권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 |
| 42 | 한편, 김계권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는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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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를 지내고, 둘째 | |
| 44 |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를 지내고, 둘째 김번(金璠)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을 지냈으며, 셋째 김순(金珣)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을 지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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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6 | [[세도정치]](勢道政治)를 주도한 세력은 흔히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 불리는, 한양을 근거로 한 신 안동 김씨의 한 분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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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평양서윤을 역임한 | |
| 48 | 평양서윤을 역임한 김번(金璠)의 후손들이 안동 김씨 서윤공파로 분파하였는데, 김번(金璠)이 중종조에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장동 김씨(壯洞 金氏)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서울 백악산(白岳山) 아래의 청풍계(淸風溪)와 장의동(壯義洞)에 터전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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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김번의 후손들은 왕비 | |
| 50 | 김번의 후손들은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명 등을 배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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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52 | === 조선 중기 === |
| 56 | 53 | 한편, 김계권의 5대손이자 김번의 증손자인 김상헌(金尙憲)이 [[인조]] 때에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조선 말기에 권력이 정점에 이르게된다. 이들은 [[세도 정치]]를 통하여 60년간 이들은 왕의 권력을 넘보는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
| ... | ... | |
| 207 | 204 | * [[김능진]](金能鎭) [[1949년]] 어담공파 [[독립기념관장]] |
| 208 | 205 | |
| 209 | 206 | === 교육자 === |
| 210 | * [[김익동]](金益東) | |
| 211 | * [[김엽]](金燁) | |
| 207 | * [[김익동]](金益東) [[1930년]] 참봉공파 [[대학]][[총장]] | |
| 208 | * [[김엽]](金燁) [[1933년]] 사직서령공파 [[대학]][[총장]] | |
| 212 | 209 | * [[김낙년]](金洛年) [[1957년]] 승의랑공파 [[대학]][[교수]] |
| 213 | 210 | * [[김향]](金香) [[1959년]] 예의소승공파 [[대학]][[교수]] |
| 214 | 211 | * [[김인현]](金仁顯) [[1959년]] 사직서령공파 [[대학]][[교수]] |
| 215 | 212 | |
| 216 | 213 | === 공무원 === |
| 217 | * [[김명년]](金命年) | |
| 218 | * [[김충립]](金忠立) | |
| 214 | * [[김명년]](金命年) [[1932년]] 국헌공파 [[정당인]] | |
| 215 | * [[김충립]](金忠立) [[1947년]] 승의랑공파 [[목사]]/[[정당인]] | |
| 219 | 216 | * [[김덕진(법조인)|김덕진]](金德鎭) [[1954년]] 문정공파 [[서울중앙지방법원|중앙지법]][[판사]] |
| 220 | * [[김경동]](金慶東) | |
| 221 | * [[김범년]](金範年) | |
| 217 | * [[김경동]](金慶東) [[1955년]] 문충공파 [[정당인]] | |
| 218 | * [[김범년]](金範年) [[1958년]] 구애공파 [[공무원]] | |
| 222 | 219 | * [[김조일]](金兆鎰) [[1966년]] 승의랑공파 [[소방공무원]] |
| 223 | * [[김성년]](金聖年) | |
| 220 | * [[김성년]](金聖年) [[1977년]] 예의소승공파 [[기초의원]] | |
| 224 | 221 | |
| 225 | 222 | === 예술인 === |
| 226 | 223 | *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년]] 문정공파 [[시인(문학)|시인]] |
| 227 | * [[김병연]](金炳淵) | |
| 228 | * [[김우진(작가)|김우진]](金祐鎭) | |
| 229 | * [[김기진]](金基鎭) | |
| 224 | * [[김병연]](金炳淵) [[1807년]] 휴암공파 [[시인(문학)|시인]] | |
| 225 | * [[김우진(작가)|김우진]](金祐鎭) [[1897년]] 승의랑공파 [[작가]] | |
| 226 | * [[김기진]](金基鎭) [[1903년]] 문충공파 [[소설가]] | |
| 230 | 227 | * [[김응현]](金膺顯) [[1927년]] 문정공파 [[서예|서예가]] |
| 231 | * [[김성동(소설가)|김성동]](金聖東) | |
| 228 | * [[김성동(소설가)|김성동]](金聖東) [[1947년]] 문충공파 [[소설가]] | |
| 232 | 229 | *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金顯喆) [[1970년]] 어담공파 [[지휘자]] |
| 233 | 230 | |
| 234 | 231 | === 언론인 === |
| 235 | * [[김을한]](金乙漢) | |
| 232 | * [[김을한]](金乙漢) [[1905년]] 문정공파 [[신문]][[기자]] | |
| 236 | 233 | |
| 237 | 234 | === 연예인 === |
| 238 | * [[김효식]](金孝植) | |
| 239 | * [[김구라|김현동]](金賢東) | |
| 240 | * [[김구(가수)|김원기]](金源基) | |
| 241 | * [[김민지(1985)|김민지]](金玟志) | |
| 242 | * [[그리(래퍼)|김동현]](金東顯) | |
| 235 | * [[김효식]](金孝植) [[1938년]] 장사랑공파 [[배우]] | |
| 236 | * [[김구라|김현동]](金賢東) [[1970년]] 문정공파 [[MC]] | |
| 237 | * [[김구(가수)|김원기]](金源基) [[1976년]] 사헌공파 [[가수]] | |
| 238 | * [[김민지(1985)|김민지]](金玟志) [[1985년]] 문충공파 [[아나운서]] | |
| 239 | * [[그리(래퍼)|김동현]](金東顯) [[1998년]] 문정공파 [[가수]] | |
| 243 | 240 | |
| 244 | 241 | === 운동선수 === |
| 245 | * [[김종일(육상)|김종일]](金鐘鎰) | |
| 246 | * [[김정년]](金政年) | |
| 242 | * [[김종일(육상)|김종일]](金鐘鎰) [[1962년]] 문정공파 [[육상|육상선수]] | |
| 243 | * [[김정년]](金政年) [[1992년]] 진사공파 [[농구선수]] | |
| 247 | 244 | |
| 248 | 245 | === 기타 === |
| 249 | * [[진렬이|김진일]](金辰鎰) | |
| 246 | * [[진렬이|김진일]](金辰鎰) [[1992년]] 어담공파 [[유튜버]] | |
| 250 | 247 | * [[김창동]](金彰東) [[2000년]] 참봉공파 [[프로게이머]] |
| 251 | 248 | |
| 252 | 249 | == 분파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