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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25%> '''등장회차''' ||1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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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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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김준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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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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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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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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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으로 죽어가는 승천태후를 보살피던 황제 야율융서가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 자신을 위해 섭정하면서 몸소 전장에 나가 요나라의 영토를 넓힌 모후의 활약[* 실제로 송태종이 연운 16주를 회복할 목적으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요나라를 침공하자 태후 본인이 직접 나서 송군을 꺾었고, 이후에는 20만 대군을 일으켜 송나라를 역으로 공격해 전연의 맹을 체결한다.]을 거론하며, 이제 자신이 그것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자, 소배압은 고려가 요에 공순하지 않고 송과 내통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꺾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야율융서도 동의하며 태후께서 서방정토로 떠나시기 전까지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알 중 한 톨만한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침공의 명분을 찾아내라고 명령한다.[* 항하의 모래라는 표현은 불교에서 자주 쓰는 비유다. 요나라가 대승 불교를 깊게 숭상하는 국가였다는 걸 반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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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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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성종 야율융서가 현종의 책봉을 요청하는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고려의 사신을 노려보다 승천태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동요한다. 이후 성종이 태후의 3년상을 중단하고 고려로의 친정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황제의 바로 뒷 대열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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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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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군 본진에서 야율융서가 군사는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묻자 동경[* 동경요양부. 현재 중국 랴오양 시.]으로 집결하고 있으며 야율융서와 그 휘하 군대가 동경에 다다를 쯤에 군사 집결이 끝나있을 것이라며 보고하면서 동경요양부에서 고려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덧붙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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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율융서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넘어오고 첫 전투의 선봉장을 야율분노에게 맡기겠다고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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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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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 야율분노가 흥화진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도통으로서 거란군의 장점이 병사 수(인력)인 점을 다시 짚어주고, 고려군을 쉬지 못하게 교대로 계속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린 뒤 타초곡[* 풀이하면 말먹이와 식량을 빼앗는다는 뜻으로, 이른바 '''약탈'''을 제도화한 것이다.]을 시행할 것을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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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흥화진이 결국 무려 일주일을 버텨내고 성종 야율융서가 분노해 야율분노를 질책하자, 고려군의 저항이 상상 이상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야율분노를 감싸지만 성종으로부터 변호하지 말라는 꾸지람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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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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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방패까지 동원했음에도 흥화진 함락에 실패하자 분노한 야율융서가 지휘관들을 처벌하려 하자, 야율융서가 지휘관들을 처벌하면 이번 패배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니 저들을 용서해 패배의 무게를 낮추라는 간언을 올려 용서를 받아낸다. 그리고 야율분노와 야율적로에게는 용서를 받아냈으니 남하할 준비를 하라면서, 덧붙여 "흥화진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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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강조의 위신이 떨어져 고려 조정이 분열과 혼란이 심화되고 자신은 역적 강조를 잡아야겠다며 더 밀고 내려갈 수 있는 명분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확실하게 전쟁을 더 이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이런 이유로 성종 야율융서도 제장들에게 통주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만족스럽진 않지만"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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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거란의 신하로 전향한 이현운이 알려주는 정보와 계책 그리고 고려군의 약점의 정보 수집에 만족스러워하며, 가장 취약했던 곽주성과 영주성을 공략해 손쉽게 함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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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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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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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백발에 얼굴에 상처가 많은 백전노장 스타일로 나온다.[* 소배압의 생년은 알 수 없지만 요사 88권 소배압 열전에 따르면, 요 성종 원년(983)에 황실 친위대인 좌피실의 지휘관인 좌피실상온으로 조복 토벌에 참가해 공을 세웠단 기록이 첫 군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된 1010년 전후의 시점엔 20년을 넘는 군공을 쌓아 노년에 접어든 이미지가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17년 전에 벌어졌던 1차 여요전쟁의 총사령관 소손녕이 소배압의 형도 아닌 동생이기도 하고. 이런 배경이 겹쳐져 강감찬과는 왕의 최측근이면서도 노년의 숙장과 노년의 강직한 문관이란 대비를 이루게 된다.] 뭔가 초탈하고 무심한 느낌도 풍기는데 작중 행보를 보면 흥화진의 약점과 공성전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고 주변을 초토화 시켜 40만의 보급과 사기를 올리고, 한소리 들었지만 패전장수를 변호하는 등 황제와 장수의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결국 흥화진이 함락 되지 않아 분노한 황제에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도 역신 강조를 멸하여 승리를 바치겠다고 자신있게 선언하기도 하고, 큰 활약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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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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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복종을 모르는 나라이옵니다. 그 자들은 폐하께 충성을 서약하고서도,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리 거란을 함께 공격하자고 제안했던 자들이옵니다.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정복해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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