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4 vs r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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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0 | 이렇게 되면 강조의 위신이 떨어져 고려 조정이 분열과 혼란이 심화되고 자신은 역적 강조를 잡아야겠다며 더 밀고 내려갈 수 있는 명분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확실하게 전쟁을 더 이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이런 이유로 성종 야율융서도 제장들에게 통주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만족스럽진 않지만"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
| 51 | 51 | |
| 52 | 52 | 이후에 거란의 신하로 전향한 이현운이 알려주는 정보와 계책 그리고 고려군의 약점의 정보 수집에 만족스러워하며, 가장 취약했던 곽주성과 영주성을 공략해 손쉽게 함락시킨다. |
| 53 | == 인간관계 == | |
| 54 | 53 | |
| 55 | 54 | == 묘사 == |
| 56 | 55 | 외모는 백발에 얼굴에 상처가 많은 백전노장 스타일로 나온다.[* 소배압의 생년은 알 수 없지만 요사 88권 소배압 열전에 따르면, 요 성종 원년(983)에 황실 친위대인 좌피실의 지휘관인 좌피실상온으로 조복 토벌에 참가해 공을 세웠단 기록이 첫 군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된 1010년 전후의 시점엔 20년을 넘는 군공을 쌓아 노년에 접어든 이미지가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17년 전에 벌어졌던 1차 여요전쟁의 총사령관 [[소손녕]]이 소배압의 형도 아닌 동생이기도 하고. 이런 배경이 겹쳐져 강감찬과는 왕의 최측근이면서도 노년의 숙장과 노년의 강직한 문관이란 대비를 이루게 된다.] 뭔가 초탈하고 무심한 느낌도 풍기는데 작중 행보를 보면 흥화진의 약점과 공성전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고 주변을 초토화 시켜 40만의 보급과 사기를 올리고, 한소리 들었지만 패전장수를 변호하는 등 황제와 장수의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결국 흥화진이 함락 되지 않아 분노한 황제에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도 역신 강조를 멸하여 승리를 바치겠다고 자신있게 선언하기도 하고, 큰 활약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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