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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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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는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이다. 1946년 초 일부가 무너진 [[도쿄]]의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한것이 소니 그룹의 시초다. 설립 당시의 CEO는 이부카 마사루의 장인이자 전 문부대신이었던 타몬 마에다가 맡았고, 이부카는 전무이사(기술 담당), 모리타는 상무이사(영업 담당)를 맡았다. 직원도 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40년대 말 최초로 생산한 제품은 [[전기밥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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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는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이다. 1946년 초 일부가 무너진 [[도쿄]]의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한 것이 소니 그룹의 시초다. 설립 당시의 CEO는 이부카 마사루의 장인이자 전 문부대신이었던 타몬 마에다가 맡았고, 이부카는 전무이사(기술 담당), 모리타는 상무이사(영업 담당)를 맡았다. 직원도 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40년대 말 최초로 생산한 제품은 [[전기밥솥]]이었다.
1919
2020
원래 사명은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 약칭 '도츠코'(東通工) 였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 네임으로는 세계 시장을 두드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1956년에 소니로 바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파나소닉|마쓰시타전기(松下電氣)]]가 7, 80년대에 수출용 제품에 파나소닉(Panasonic)이라는 상표를 달았으며, 2008년에는 회사이름을 아예 파나소닉으로 바꾸기도 했다. 물론 [[후지쯔]](富士通 Fujitsu)같이 뜻과 발음이 어려워도 사명을 고수하는 기업도 있다.] 이는 짧고 쉽고 산뜻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도 똑같이 읽힌다'는 훌륭한 브랜드 마케팅의 사례로 꼽힌다. 언어학적으로 볼때 CV+CV형[* C는 Consonant(자음), V는 Vowel(모음)을 뜻한다.]이라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 가능한 단어이다.[* 발상이 비슷한 사례가 코닥필름. 설립자인 조지 이스트먼은 [[코닥]]이라는 이름이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하기 쉽다고 하여 이 이름으로 회사를 냈다. --[[일본|??:コダック...]]--] 어원은 sound나 sonic의 어원인 라틴어 'sonus'와, 'sonny--[[손흥민|음?]]--'의 합성어라고 한다. 원래 사명을 sonny라고 하려다가 '손니'라는 발음 그대로 읽으면 일어로 손실 손해라는 말과 가깝기에 n자 하나를 빼고 지금의 SONY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소니 워크맨|워크맨]]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에도 미국인들이 [[토요타]]는 [[일본]] 기업[* 때문에 당시 일본 제품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렉서스]]라는 고품격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이지만 소니는 [[미국]] 기업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1990년대 중순부터 "소니는 일본 기업입니다."라고 홍보를 했더니만 해외에서 반응은 그랬냐? 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니도 이젠 일본 기업으로 알든지 말든지 포기했다. --소니 픽처스가 배급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극중에도 '소니가 일본 거(일본 기업)'이라는 대사가 포함되기도 하였다.--] [[http://www.stylezineblog.com/116|정보]] 과거 미국에서 [[노키아]]가 일본기업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던 일처럼 의외로 흔한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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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2단계와 3단계 계획도 준비했는데, 2단계 Synergy 계획은 소니의 제품이 서로 연결되면 소비자가 소니의 제품을 사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소니의 제품들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계획이고 3단계 Hub 계획은 전 세계 각 가정을 소니 제품으로 하나의 디지털 허브로 만드는 계획이다. 여기까지 계획이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이데이 CEO는 TV, 각종 전자기기, 컴퓨터 등을 소니의 콘텐츠와 연결하여 하나의 홈네트워크가 되어 다양한 수익 모델이 창출될 것으로 보았고,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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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계획은 1단계에서 끝나게 되는데,''' 이데이 CEO는 소니 제품을 서로 연결하면 소비자들이 인기있는 소니의 제품을 구매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판매가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이와 달랐다. 소니는 제품들을 서로 연결할때 하나의 소니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하여 독자적인 포맷을 고집하였다. 예를 들어 소니 TV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만 연결할 수 있었고 소니 멀티미디어기기는 소니 제품끼리만 연결될 수 있었다. 독자적인 포맷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소니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소니의 제품을 사야만 했다. 당시 소니는 기술적으로 1등 기업이었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소니는 혁신적이었던 제품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니의 둘레 안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적인 소니의 태도는 [[베타맥스]]의 실패에서 예견되었던 것처럼 전자시장에서 소니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점차 소니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전략은 모험적, 양날의 칼이다. 생각대로 성공하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싸더라도 독자 포맷을 사게 되고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 올려 마치 2010년대 이후의 [[애플(기업)]]처럼 대박을 친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고 실패하면 1990년대의 [[애플(기업)]]처럼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상당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 무엇보다 소비자들을 끌고 올 만한 독점적인 상품성이 있어야 하며, 이는 1등 기업이라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독보적''' 1등 기업이여야지만 가능하다. 상기 애플의 사례도 90년대에는 독보적인 1위가 아니었기에 휘청거린것이며, 2010년대 이후에도 스마트폰이라는 독점적 1위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당시의 소니는 인기 있는 제품군에서 1등은 1등이지만 압도적이지는 못 했고 2,3위 기업들도 나름 잘 만들고 있었으며, 일본 국내에서조차 동종 업계에 [[파나소닉]]이나 [[히타치]] 등 더 규모가 큰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었다.][* 앞서 [[베타맥스]]의 실패 사례를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베타맥스가 더 비싸더라도 그 이상의 뛰어난 화질을 보여줘서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는다던가, 설령 성능 면에서 뒤떨어 지더라도 컨텐츠 업체와의 제휴를 잘 해서 경쟁 방식에 비해 영상물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던가, 그도 아님 타 방식보다 우월한 가성비를 보여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던가 했다면 당연 대박 터졌을 것이다. 하지만 베타맥스는 최 전성기 시절에도 셋 중 어느 하나도 아니였다. 이미 베타맥스에서 실패해 굴욕적으로 [[VHS|타사의 방식]]을 채용한 [[VCR]]로 갈아 탈 정도가 되었으면 여기서 교훈을 얻은 것이 있었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미래 기술 변화를 예측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이데이 CEO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면서 미리 대비하려고 했고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가서 오히려 다가오는 기술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것이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산업]]에서 실패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자기기를 모두 연결한다는 발상 자체는 디지털 드림 키즈가 발표되고 약 20년 후에 [[IoT]]로 현실화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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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계획은 1단계에서 끝나게 되는데,''' 이데이 CEO는 소니 제품을 서로 연결하면 소비자들이 인기있는 소니의 제품을 구매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판매가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이와 달랐다. 소니는 제품들을 서로 연결할때 하나의 소니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하여 독자적인 포맷을 고집하였다. 예를 들어 소니 TV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만 연결할 수 있었고 소니 멀티미디어기기는 소니 제품끼리만 연결될 수 있었다. 독자적인 포맷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소니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소니의 제품을 사야만 했다. 당시 소니는 기술적으로 1등 기업이었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소니는 혁신적이었던 제품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니의 둘레 안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적인 소니의 태도는 [[베타맥스]]의 실패에서 예견되었던 것처럼 전자시장에서 소니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점차 소니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전략은 모험적, 양날의 칼이다. 생각대로 성공하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싸더라도 독자 포맷을 사게 되고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 올려 마치 2010년대 이후의 [[애플(기업)]]처럼 대박을 친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고 실패하면 1990년대의 [[애플(기업)]]처럼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상당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 무엇보다 소비자들을 끌고 올 만한 독점적인 상품성이 있어야 하며, 이는 1등 기업이라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독보적''' 1등 기업이여야지만 가능하다. 상기 애플의 사례도 90년대에는 독보적인 1위가 아니었기에 휘청거린것이며, 2010년대 이후에도 스마트폰이라는 독점적 1위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당시의 소니는 인기 있는 제품군에서 1등은 1등이지만 압도적이지는 못 했고 2,3위 기업들도 나름 잘 만들고 있었으며, 일본 국내에서조차 동종 업계에 [[파나소닉]]이나 [[히타치]] 등 더 규모가 큰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었다.][* 앞서 [[베타맥스]]의 실패 사례를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베타맥스가 더 비싸더라도 그 이상의 뛰어난 화질을 보여줘서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는다던가, 설령 성능 면에서 뒤떨어 지더라도 컨텐츠 업체와의 제휴를 잘 해서 경쟁 방식에 비해 영상물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던가, 그도 아님 타 방식보다 우월한 가성비를 보여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던가 했다면 당연 대박 터졌을 것이다. 하지만 베타맥스는 최 전성기 시절에도 셋 중 어느 하나도 아니였다. 이미 베타맥스에서 실패해 굴욕적으로 [[VHS|타사의 방식]]을 채용한 [[VCR]]로 갈아 탈 정도가 되었으면 여기서 교훈을 얻은 것이 있었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미래 기술 변화를 예측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이데이 CEO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면서 미리 대비하려고 했고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가서 오히려 다가오는 기술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산업]]에서 실패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자기기를 모두 연결한다는 발상 자체는 디지털 드림 키즈가 발표되고 약 20년 후에 [[IoT]]로 현실화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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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이 CEO가 창사 이래 사활을 걸고 [[베가]](WEGA), [[VAIO|바이오]](VAIO)[* 소니는 [[컴퓨터]] 시장에 [[NEC]], [[후지쯔]], [[샤프(기업)|샤프]](소위 일본의 컴퓨터 빅3)보다 진출을 늦게 했는데, 단순히 늦은게 문제가 아니라 위 3사는 독자 아키텍처의 PC를 개발해 상당 기간 (비록 [[갈라파고스화/일본|국내 한정]]이지만)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고, 이로 인해 관련 기술 등을 쌓아갔다. 그러나 소니는 늦었던 탓에 독자 아키텍처가 실패하고 바로 [[MSX]] 노선으로 발을 돌렸으며, 8비트가 끝난 이후에도 PC 산업에 생각처럼 적극적이지 않았다. 즉 IT 산업에 대한 기술 및 이해도가 선발주자 등에 비해 뒤졌다는 것이다. VAIO 또한 케이스에 고급 재질의 사용, 훌륭한 디자인 등 심미적인 의미 등으로 성공한 것이지 PC의 퍼포먼스 자체로는 다른 PC기업에 비해 뒤떨어졌다.]등을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디지털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아 소니의 봄은 짧았고[* 이데이 CEO는 1996년 바이오 사업을 준비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컴퓨터 OS를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가 오기 직전 몰락하고 있던 '''[[Apple|애플]]'''을 인수하려고 하기도 했다. 당시 이사진들의 반응이 "쓰러져가는 회사 인수해서 뭐하려고"라고 였다고. 만약 애플이 소니로 인수되었으면 현재 IT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니가 자회사끼리 서로 사이가 좋지않은걸 보면 오히려 손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소니가 본격적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거꾸로 애플이 소니를 인수할 것이라는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128326593137184&SCD=DD47&DCD=A00304|루머]]도 나오게 된다.] 결국 이러한 영향은 계속되어 2003년 4월 '''소니 쇼크 사태'''[* 도쿄증시의 소니 주가가 3만엔 선에서 5백엔 대로 폭락한 사태. 소니의 주가는 2003년 4월 25일부터 같은 해 4월 27일까지의 이틀 사이에 모두 27%가 빠지면서 시가총액중 8,950억엔(약 10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는 소니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국의 다른 전자업체에게까지 도미노로 영향을 주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부터 2017년까지 소니의 주가는 4천엔을 넘지 못하고 있었으며, 7천엔을 돌파한 것은 2019년 12월이 되어서다.]가 일어나게 된다.~~ 너무 시대를 앞서서 투자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놓치게 된 사례~~ 소니 쇼크 사태 이후 소니가 과거 전성기 때의 혁신적인 모습과 창의성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전자산업 분야에서의 브랜드 가치도 하락하게 되었다.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 [[전자산업]]이 시대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쇠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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