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0 vs r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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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8 | == 비판 == |
| 9 | 9 | === 계유정난을 통한 즉위 === |
| 10 | 10 | ==== 정통성에 맞지 않는 즉위 과정 ==== |
| 11 | 세조 치적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왕권 강화에 기반을 다졌다는 것은 단종을 몰아내고 아무런 명분도 없이 자신 스스로 즉위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흔히 세조를 태종에 비교 하는데, 세조와 태종은 명분과 그 행동 사이즈가 차이가 컸다. 특히 태종 시절에 경우 태조가 방석을 세자로 앉히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사실상 명분도 태종에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우선 차장자인 형 이방과를 왕으로 앉힌 후에 정당한 세자책봉을 통해 집권하면서 집권의 명분을 치밀하고 착실하게 만들었다. | |
| 11 | 세조 치적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왕권 강화에 기반을 다졌다는 것은 단종을 몰아내고 아무런 명분도 없이 자신 스스로 즉위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흔히 세조를 태종에 비교 하는데, 세조와 태종은 명분과 그 행동 사이즈가 차이가 컸다. 특히 태종 시절에 경우 [[태조(조선)|태조]]가 [[의안대군|방석]]을 [[세자]]로 앉히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사실상 명분도 태종에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우선 차장자인 형 [[정종(조선)|이방과]]를 [[왕]]으로 앉힌 후에 정당한 세자책봉을 통해 집권하면서 집권의 명분을 치밀하고 착실하게 만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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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13 | [[태종(조선)|태종]]과는 다르게 세조가 단순히 배신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는 여기 있다. 명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종(조선)|단종]]의 정치 기반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조정에 충신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조선)|세종]]과 [[문종(조선)|문종]]때 워낙 잘 길을 닦아 놔서 적정수준의 [[간신]]과 [[충신]]이 섞여 있었다. 단종이 단명했기 때문에 그 치적을 알 수 없으나 원래대로 단종이 계속 이어 나갔다면, 앞서 언급한 정통성 문제 또한 해결이 되고[* 문종에 이어 2대째 장남이 이어가는 상황], 단종 본인만 조심하면 문종 때까지 이어졌던 강화된 왕권이 흔들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지지 기반을 보나 환경을 보더라도 더 나았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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