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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vs 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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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는 다르게 세조가 단순히 배신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는 여기 있다. 명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종의 정치 기반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조정에 충신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과 문종때 워낙 잘 길을 닦아 놔서 적정수준의 간신과 충신이 섞여 있었다. 단종이 단명했기 때문에 그 치적을 알 수 없으나 원래대로 단종이 계속 이어 나갔다면, 앞서 언급한 정통성 문제 또한 해결이 되고(문종에 이어 2대째 장남이 이어가는 상황), 단종 본인만 조심하면 문종 때까지 이어졌던 강화된 왕권이 흔들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지지 기반을 보나 환경을 보더라도 더 나았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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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일한 단점은 단종이 너무 어렸다는 것인데, 그당시가 조선이 개국하고 고작 5대째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자. 성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적은 나이라고만 보기도 어려웠다. 물론 국정 수행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을 것이기에 좋은 스승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아낸 조카 단종은 조선 시대 통틀어 가장 정통성이 충분했던 군주 중 한 명이였다. 그런 단종을 딱히 능력을 검증할 틈도 안주고 하늘나라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이런 단종에 대한 아쉬움 역시 세조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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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일한 단점은 단종이 너무 어렸다는 것인데, 그당시가 조선이 개국하고 고작 5대째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자. 성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적은 나이라고만 보기도 어려웠다. 물론 국정 수행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을 것이기에 좋은 스승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아낸 조카 단종은 조선 시대 통틀어 가장 정통성이 충분했던 군주 중 한 명이였다. 그런 단종을 딱히 능력을 검증할 틈도 안주고 하늘나라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이런 단종에 대한 아쉬움 역시 세조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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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통성이 문제가 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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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무인정사로 아버지 태조의 정치적 입지를 몰아내고 즉위했지만 형제들 중 가장 건국의 공로가 컸기에 명분이 충분했다. 무인정사의 명분이 장자계승이었기 때문에 그 공로만으로는 명분이 충분치 않았지만 형 정종이 적자를 보지 못했고 회안대군이 섣불리 나서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을 잃었기에 별 문제 없이 즉위할 수 있었다. 성종은 친형 월산대군과 예종의 적자이자 4살인 어린 제안대군을 제치고 예종의 뒤를 이었지만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가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하였기 때문에 정통성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또한, 제안대군은 세종의 아들이었던 5촌 당숙인 평원대군의 봉사손으로 출계함으로써 직계 왕위와 한참 멀어졌고, 성종은 아버지 의경세자를 덕종 대왕(德宗大王)으로 사후 추존하여 정통성을 높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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