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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6 | ===== 정통성이 문제가 된 이유 ===== |
| 17 | 17 | [[태종(조선)|태종]]은 [[무인정사]]로 아버지 [[태조(조선)|태조]]의 정치적 입지를 몰아내고 즉위했지만 형제들 중 가장 건국의 공로가 컸기에 명분이 충분했다. 무인정사의 명분이 [[장자계승]]이었기 때문에 그 공로만으로는 명분이 충분치 않았지만 형 정종이 적자를 보지 못했고 [[회안대군]]이 섣불리 나서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을 잃었기에 별 문제 없이 즉위할 수 있었다. 성종은 친형 월산대군과 예종의 적자이자 4살인 어린 제안대군을 제치고 예종의 뒤를 이었지만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가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하였기 때문에 정통성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또한, 제안대군은 세종의 아들이었던 5촌 당숙인 평원대군의 봉사손으로 출계함으로써 직계 왕위와 한참 멀어졌고, 성종은 아버지 [[덕종(조선)|의경세자]]를 [[덕종(조선)|덕종 대왕]](德宗大王)으로 사후 추존하여 정통성을 높이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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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그러나 세조의 적장손이자 덕종(의경세자)의 적장자 | |
| 19 | 그러나 세조의 적장손이자 덕종(의경세자)의 적장자 월산대군의 정통성은 성종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희왕후의 지명 정도로 무마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정통성 문제는 두고두고 성종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에 성종은 세종과 두 형인 양녕대군, 효령대군의 전례대로 친형인 월산대군을 배척하거나 귀양보내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독했다고 한다. 또한 신하들을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고 아끼고 잘 대해주어 자기 사람으로 만들면서 정통성 문제도 점차 누그러지게 되었다. 사실 신하와 백성들 모두가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성군이 되는 게 강력한 정통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당장에 세종도 맏형인 양녕대군이 워낙 초막장이라 그렇지 바로 위의 형인 효령대군은 조용히 지낸지라 그와는 딱히 정통성 측면에서 유리할 것도 없었지만 정치를 잘 했기에 아무도 이의를 걸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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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인조(조선)|인조]]는 [[인조반정]]으로 공을 세워 즉위하였지만, [[선조(조선)|선조]]의 서자이자 다섯째 정원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장자, 적자계승을 모두 어겼기 때문에 조선 왕 중 가장 정통성이 부족하다. 또한 선조의 양자로 즉위해 놓고선 친부 정원대원군을 원종 대왕(元宗大王)으로 추존해 정통성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인조의 정통성이 저평가받지 않는 이유는 이후 왕들이 전부 인조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인조반정의 명분도 적어도 세조에 비해서는 훨씬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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