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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그러나 세조의 적장손이자 덕종(의경세자)의 적장자 0월산대군의 정통성은 성종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희왕후의 지명 정도로 무마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정통성 문제는 두고두고 성종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에 성종은 세종과 두 형인 양녕대군, 효령대군의 전례대로 친형인 월산대군을 배척하거나 귀양보내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독했다고 한다. 또한 신하들을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고 아끼고 잘 대해주어 자기 사람으로 만들면서 정통성 문제도 점차 누그러지게 되었다. 사실 신하와 백성들 모두가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성군이 되는 게 강력한 정통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당장에 세종도 맏형인 양녕대군이 워낙 초막장이라 그렇지 바로 위의 형인 효령대군은 조용히 지낸지라 그와는 딱히 정통성 측면에서 유리할 것도 없었지만 정치를 잘 했기에 아무도 이의를 걸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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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인조는 인조반정으로 공을 세워 즉위하였지만, 선조의 서자이자 다섯째 정원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장자, 적자계승을 모두 어겼기 때문에 조선 왕 중 가장 정통성이 부족하다. 또한 선조의 양자로 즉위해 놓고선 친부 정원대원군을 원종 대왕(元宗大王)으로 추존해 정통성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인조의 정통성이 저평가받지 않는 이유는 이후 왕들이 전부 인조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인조반정의 명분도 적어도 세조에 비해서는 훨씬 충분했다. | |
| 21 | [[인조(조선)|인조]]는 [[인조반정]]으로 공을 세워 즉위하였지만, [[선조(조선)|선조]]의 서자이자 다섯째 정원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장자, 적자계승을 모두 어겼기 때문에 조선 왕 중 가장 정통성이 부족하다. 또한 선조의 양자로 즉위해 놓고선 친부 정원대원군을 원종 대왕(元宗大王)으로 추존해 정통성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인조의 정통성이 저평가받지 않는 이유는 이후 왕들이 전부 인조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인조반정의 명분도 적어도 세조에 비해서는 훨씬 충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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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정원군의 동복형 의안군과 신성군은 후사 없이 선조 치세(1567-1608)에 요절했고, 영창대군은 이복형 광해군에게 어린 나이(9세)에 의문스럽게 살해당했다. 게다가 신성군은 세자 후보이기도 했었고, 인조반정 당시 인조의 직접적인 공로와 명분이 확실했기에 정원군의 혈통이 인조에게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고 명의 고명 책봉을 받은 이후 인조의 정통성은 문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정원군을 추존왕인 '원종(元宗)'으로 추존한다는 것은 선조-원종-인조의 대통을 하나로 이음으로써 정통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이었고, 추존할 명분이 취약해 크게 비난받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통성을 내치는 짓과는 거리가 있었다. | |
| 23 | 정원군의 동복형 의안군과 신성군은 후사 없이 선조 치세(1567-1608)에 요절했고, [[영창대군]]은 이복형 광해군에게 어린 나이(9세)에 의문스럽게 살해당했다. 게다가 신성군은 세자 후보이기도 했었고, 인조반정 당시 인조의 직접적인 공로와 명분이 확실했기에 정원군의 혈통이 인조에게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고 명의 고명 책봉을 받은 이후 인조의 정통성은 문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정원군을 추존왕인 '원종(元宗)'으로 추존한다는 것은 선조-원종-인조의 대통을 하나로 이음으로써 정통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이었고, 추존할 명분이 취약해 크게 비난받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통성을 내치는 짓과는 거리가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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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반면에 세조는 장자계승은 어겼지만 적자이자 차남이기 때문에 '직계승통(直係承統)'으로 넘어갈 만하다. 적자>서자, 장자>차자>…라는, 즉 적장자와 그 자손 부재 시 적자이자 차남인 게 정통성으로 작용한다는 것 자체가 장자계승의 논리이다. 조카 단종을 명분 없이 내쳐 장자계승을 어겼지만 장자계승을 통해 명분을 얻었다는 것은 모순 그 자체다. 특히나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는 조의제문이 사화의 발단이 된 예가 있듯이 실록에 있어 조카의 왕위 찬탈 및 살해라는 패륜 행위로 왕이 된 세조에 대한 부분만은 당시로서는 더욱 예민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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