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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륜/도를 넘는 숙청 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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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과 조카, 서모와 사돈 송현수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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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형제 관계에서도 친형인 문종에게 엄청난 불경을 저질렀다. 계유정난 때 병조판서 민신을 살해하는데, 이 때 살해당하는 장소가 형 문종의 무덤인 현릉 비석소(비석을 관리하는 곳)였다. 말이 비석소지 비석소를 보통 무덤 근처에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형의 무덤에서 사람을 죽여버린 것이다. 현대 기준으로도 고인 모욕급 행동이고, 당시기준으로는 저주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또한, 문종의 정실이자 자신의 형수인 현덕왕후 권씨의 친정 일가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자, 현덕왕후를 폐서인하고 무덤을 현릉에서 파헤쳐 평민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당시 현덕왕후는 남편이자 세조의 친형인 문종과 이미 합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형수에게도 불경을 범한 것인 데다, 애꿎은 형이자 선왕에게까지도 패륜과 무례를 범한 셈이다. 이것 때문에 세조가 너무나도 잘난 엄친아 형이었던 문종에게 어릴 적부터 심한 열등감과 그에 따른 자격지심을 가졌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게다가 현덕왕후의 무덤을, 무덤터로는 최악인, 범람이 잦고 습한 지역으로 이장해버렸다. 이를 두고, 세조가 단종을 죽인 뒤에 형수 현덕왕후의 원혼이 세조의 꿈에 나타나 저주를 걸었고, 이 때문에 의경세자가 일찍 죽었다는 야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의경세자는 사촌동생 단종보다 일찍 요절했기에 이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태종조차 확실히 반란을 일으켜 시가전까지 만든 동복형을 살려주었으나 세조는 반란 혐의만으로 동복형제들까지 살해하는 짓을 저질렀다. 자기 기준에서 세조의 찬탈 행위를 방해 혹은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유정난 때 사살한 역적이나 사육신 등 역모[5]가 있었다고 해도 조카 단종은 정통성이 높았다. 명신인 황보인, 김종서 등 대신들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냥 살해했는데 김종서 또한 청렴결백하고 흠잡을 이유가 없고 북방 개척, 뛰어난 행정 능력, 《고려사》 편찬까지 한, 아버지 세종이 신임하던 명신들 중 1명이다. 정분 또한 두 사람에 비해 행정 능력은 딸리지만 토목 사업이나 건축에는 업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물을 설계한 공도 있었다. 이러한 명망높은 대신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죽여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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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형제 관계에서도 친형인 [[문종(조선)|문종]]에게 엄청난 불경을 저질렀다. [[계유정난]][[병조판서]] [[민신]]을 살해하는데, 이 때 살해당하는 장소가 형 문종의 무덤인 현릉 비석소[* 비석을 관리하는 곳]였다. 말이 비석소지 비석소를 보통 무덤 근처에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형의 무덤에서 사람을 죽여버린 것이다. 현대 기준으로도 고인 모욕급 행동이고, 당시기준으로는 저주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또한, 문종의 정실이자 자신의 형수인 [[현덕왕후]] 권씨의 친정 일가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자, 현덕왕후를 폐서인하고 무덤을 현릉에서 파헤쳐 평민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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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동생들(한남군, 수춘군, 영풍군)도 단종을 지지한다이유로 마음대로 죽이고 식솔을 노비로 부리는 잔학한 면모도 있었고, 세종의 궁으로 자기에게서모에 해당하는 혜빈 양씨 또한 찬하려던 것을 막으려 하그녀도 죽여버렸다. 그것도 강제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로 만들어서 절로 내쫓은 다음에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친조카인 단종까지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세조인데, 심지어는 친동생 안평대군양어머니이자 자신의 숙모였던 성녕대군 부 양자를 두둔한다는 유만으로 폐서인시키짓도 서슴치 않고 벌였다. 아이러니 사실은 성녕대군의 장례식 양녕대군은 활쏘기와 음주가무 중이었고 참고 참던 아버지 태종조차 "세자는 이제는 사람의 마음이 없."고 분노했다. 그런데 양녕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을 적극 지지했다. 한마디로 존속살해에 전혀 거리낌없할아버지 태종조차 정치적 목적 없으면 하기를 꺼린 일을 예사로 해댄 희대의 패륜아다. 조의 역사상 자기의 작은 어머니, 이복형제 더해서 동복형제까지 이렇게 마음대로 다 죽여버리고 작은 어머니폐서인시키는 왕은 세조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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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당시 현덕왕후는 남편이자 세조의 친문종과 합장되어 있상태였다. 러니 형수에게도 불경을 범한 것인 , 애꿎 [[문(조선)|선왕]]까지 패륜과 무례범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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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가장 까 부분은 단종 관련 문제다. 은 사육신 사건 때 사육신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 발각되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제로 강당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갔다 곳에서 어린 나이(16~17세)에 사약을 받았다. 못해 세조 사 집권하여 후세에게 암군이라고 자주 비난받는 인조조차도 전 국왕 광해군을 죽이지 않멀리 제주도유배 보내는 선에서 그쳤는데 세조는 친조카를 살해했을 뿐 아니라 시체 수습도 안하고 야생동물들 뜯어먹게 방치하는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 자살해서 예갖추어 장사 지냈다.적어놓는 씨알도 안 먹힐 역사왜곡까지 대놓고 해놨다. 훗날 중 때 노산군(단종)의 묘소 정비를 시작하면서 단종최후에 대한 전모가 드러났다. 중종 유학자 음애 자는 《음애잡기》실록기록들은 쥐새끼와 여우새끼들이 아첨을 하한 붓장난이니, 이에 속말라고 대놓고 까버리는 글을 적었을 정도였다. 단종을 시해한 뒤에는 왕 족보인 《선원보략》에서 파 버리는 짓도 벌였다. 바적장자 단종을 살아있을 때는 문종로 만들어 버린 뒤 사후에서자 아래인 사생아로까지 격하시킨 것. 이래놓고 왕위 찬탈 전에는 자기 측근들을 시켜서 자신을 삼촌으로 어린 주성왕을 보필던 주공단비유하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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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너무나도 잘난 엄친아 형었던 종에게 어 적부터 심한 감과 그에 따른 자격지심을졌던 아닌가 하는 추측도 다. 현덕왕 무덤을, 무덤터로최악, 범람습한 지역으로 이장해버렸다. 이를 , 세조가 [[단종(조선)|단종]]을 죽인 뒤에 형수 현덕왕후원혼이 세조의 꿈에 나타나 저주를 걸었고,때문[[덕종(선)|경세자]]가 일찍 죽었다[[야]]까나왔다. 로 의경세자는 사촌동단종보다 일찍 요절사실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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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조차 수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시가전까지 일으킨 [[회안대군|동복형]]을 살려주었으나, 세조는 반란 혐의만으로 동복형제들까지 살해하는 짓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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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기준에서 세조의 찬탈 행위를 방해 혹은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유정난 때 사살한 역적이나 사육신 등 역모가 있었다고 해도 조카 단종은 정통성이 높았다. 명신인 황보인, 김종서 등 대신들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냥 살해했는데 김종서 또한 청렴결백하고 흠잡을 이유가 없고 북방 개척, 뛰어난 행정 능력, 《고려사》 편찬까지 한, 아버지 세종이 신임하던 명신들 중 1명이다. 정분 또한 두 사람에 비해 행정 능력은 딸리지만 토목 사업이나 건축에는 업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물을 설계한 공도 있었다. 이러한 명망높은 대신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죽여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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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동생들(한남군, 수춘군, 영풍군)도 단종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죽이고 식솔을 노비로 부리는 잔학한 면모도 있었고, 세종의 후궁으로 자기에게는 서모에 해당하는 혜빈 양씨 또한 찬하려던 것을 막으려 하자 그녀도 죽여버렸다. 그것도 강제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로 만들어서 절로 내쫓은 다음에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친조카인 단종까지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세조인데, 심지어는 친동생 안평대군의 양어머니이자 자신의 친숙모였던 성녕대군 부인을 양자를 두둔한다는 이유만으로 폐서인시키는 짓도 서슴치 않고 벌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성녕대군의 장례식 때 양녕대군은 활쏘기와 음주가무 중이었고 참고 참던 아버지 태종조차 "세자는 이제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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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녕대군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적극 지지했다. 한마디로 존속살해에 전혀 거리낌없이 할아버지 태종조차 정치적 목적 없으면 하기를 꺼린 일을 예사로 해댄 희대의 패륜아다. 조선의 역사상 자기의 작은 어머니, 이복형제에 더해서 동복형제까지 이렇게 마음대로 다 죽여버리고 작은 어머니를 폐서인시키는 왕은 세조 이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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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가장 까이는 부분은 조카 단종 관련 문제이다. 단종은 사육신 사건 때 사육신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 발각되어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제로 강등당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갔다가 그 곳에서 어린 나이(16~17세)에 사약을 받았다. 하다 못해 세조 사후에 집권하여 후세에게 암군이라고 자주 비난받는 인조조차도 전 국왕이던 광해군을 죽이지 않고 멀리 제주도로 유배 보내는 선에서 그쳤는데 세조는 친조카를 살해했을 뿐 아니라 시체 수습도 안하고 야생동물들이 뜯어먹게 방치하는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해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다.고 적어놓는 씨알도 안 먹힐 역사왜곡까지 대놓고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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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중종 때 노산군(단종)의 묘소 정비를 시작하면서 단종의 최후에 대한 전모가 드러났다. 중종 대 유학자 음애 이자는 《음애잡기》에 세조실록의 기록들은 쥐새끼와 여우새끼들이 아첨을 하는 간사한 붓장난이니, 이에 속지 말라고 대놓고 까버리는 글을 적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단종을 시해한 뒤에는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에서 파 버리는 짓도 벌였다. 바로 적장자 단종을 살아있을 때는 문종의 서자로 만들어 버린 뒤 사후에는 서자 아래인 사생아로까지 격하시킨 것. 이래놓고 왕위 찬탈 전에는 자기 측근들을 시켜서 자신을 삼촌으로 어린 주성왕을 보필했던 주공단에 비유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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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은 아니지만 세조 본인과 매우 가까운 왕실의 인척도 방해가 되면 가리지 않고 죽인 전적도 있다. 단종의 장인어른이자 정순왕후의 아버지 여량부원군 송현수는 단종복위운동에 휘말려 사사당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은 세조 본인과 매우 절친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가 단종의 장인이 된 것도 세조의 영향이 매우 컸는데 송현수 입장에서는 옛 속담처럼 모진 놈과 친했다가 정말 날벼락 맞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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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석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다. 태종이 저지른 왕자의 난 때문에 제자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자신을 만나러 며칠을 기다리는 태종을 피해 도망다닐 정도였는데, 후에 상왕으로 은거한 태종의 부름에 마지 못해 만나러 왔다. 이 때 태종이 스승에게 자신의 손자들을 직접 소개시켜 주었는데 노인이 아직 어린 세조를 보고 "조부를 닮았는데 부디 형제를 사랑해라." 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다. 오죽하면 이런 야사가 남아있을까? 그리고 태종의 스승이었기에 원천석에게 관직을 주었으나 모두 거절하였고 나중에는 태종이 직접 스승을 만나러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까지 찾아가는데 이를 알고 원천석이 미리 피했고 결국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치악산을 가보면 태종이 행차했던 길이나 잠시 앉아있던 곳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