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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3 vs r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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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d00027> {{{#fff '''{{{+1 523경기 369득점 88도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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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클럽 경력/부엉이 유나이티드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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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으로, 전라민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 어린 나이에 엄청난 재능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1997년 17세 325일의 나이로 1군팀에 콜업되 리그 23R 아울 스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유망주다운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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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으로, 전라민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 어린 나이에 엄청난 재능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1997년 17세 325일의 나이로 1군팀에 콜업되었다. 등번호는 52번. 그고 리그 23R 아울 스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에서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유망주다운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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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시즌:''' '''4경기 1도움 (선발 1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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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1999시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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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8년 5월,팀의 완전한 주전 공격수가 되었다. 부엉이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시즌은 주전 윙어로 뛰다가 1998-1999 시즌, 스트라이커로 포지션 변경을 하여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중위권 팀이던 부엉이 유나이티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어린 나이에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팀 내 득점 1위, 리그 득점 2위까지 달성하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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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8년 5월,팀의 완전한 주전 공격수가 되었다. 부엉이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시즌은 윙어로 뛰다가 1998-1999 시즌, 스트라이커로 포지션 변경을 하여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중위권 팀이던 부엉이 유나이티드의 20년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어린 나이에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팀 내 득점 1위, 리그 득점 2위까지 달성하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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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bgcolor=#199ed6><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32
|| [[ZPR리그]] || 34 || 29 || 5 || 20 || 6 ||
32
|| [[ZPR리그]] || 34 || 29 || 5 || 19 || 6 ||
3333
|| [[운지컵]] || 2 || 1 || 1 || 0 || 1 ||
34
||<rowbgcolor=#fff><rowcolor=#199ed6> '''합계''' || '''36''' || '''30''' || '''6''' || '''20'''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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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bgcolor=#fff><rowcolor=#199ed6> '''합계''' || '''36''' || '''30''' || '''6''' || '''19'''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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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0 시즌에는 [[노알라 FC]]와의 운지컵 결승에서 엄청난 무회전 프리킥으로 극장 역전을 만들며 역전 우승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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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맨시티와의 계약이 만료된 뒤 [[레딩 FC]]와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 레딩에서 12경기를 뛰었으며, 2014년 레딩의 승격이 좌절된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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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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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2살 비교적 젊은에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다. 국가대표에 동갑내기 [[애슐리 콜]]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그리 눈띄는 활약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2002년부터 자주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지만 경기는 36경기뿐이다. 게다가 2010년 1월 30일, '''그 사건'''이 터지면서 아예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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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 노무현의 재능전국에 알려지며 1998 월드컵에서 소집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왔으나, 월드컵 엔트리들지 못하여 1999년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다. 처음 국가대표에 노선홍,슨정원 의 라인업 때문출전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2001년부터 같은 유망주인 운지성과 함께 자주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 2002년 월드컵에서도 전하여 4강 신화를 함께하였고, 2006 월드컵에서도 출천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2009523일, '''그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대표에서 은퇴할뻔 지만 우여곡절 끝에 2010월드컵 엔트리에는 들수 있었다.[* --하지만 후유증과 살인태클 부상으로 마지막 월드컵이 된건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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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2000년대의 잉글랜드의 영원한 숙제 '수준급 왼쪽 윙어 발굴'이 도저히 답이 안보이자 브릿지를 왼쪽 윙어로 기용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윙어 데뷔전은 평점 7점을 받으며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정답이 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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