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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 vs 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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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선별해야 합니다.[* 봉누도 내 반군 세력으로 활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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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경찰서 경찰 견, 前 시민의힘 대표, 2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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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경찰서 경찰 견, 前 시민의힘 대표, 그리고 봉누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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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힘 설립 이전 현상백은 봉누도경찰서 2기 모집 기간에 특채된 경찰이었지만 근무하면서 경찰의 업무 방향이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다고 판단하여 경찰 신분을 벗어던지고 평범한 시민이 되어 시민들을 위하는 시민대표가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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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복권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경찰서까지 행진하며 시위했는데, 복권방에서 하루종일 복권만 긁던 도파민 중독자들과 전날 봉누도 전역을 돌며 인터뷰로 모아놓은 전화번호 및 전체 채팅을 보고 어그로가 끌린 일반 시민, 그리고 재밌어 보인다고 끼어든 갱단까지 합쳐 4~60명 규모의 대행렬이 이뤄졌다. 시민들을 등에 업고 서버장에게 진지하게 콘텐츠를 건의하려고 했지만 봉남서장이 의뢰한 갱단이 난입하여 학살을 시작하며 흐지부지되었다.[* 다만 콘텐츠 건의를 아예 묵살한 것은 아니다. 그때 의뢰한 정비소 헬기와 정부청사 같은 것들은 다음 날 즉시 반영되었다. 상황이 점점 뇌절 분위기로 흘러가자 웬만한 의견은 다 나왔다고 생각한 서장이 적절하게 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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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2.6 갱단·경찰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단순히 흩어져 있는 시민들 개개인을 설득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시위 핵심 인물들과 함께 시민을 위한 조직이자 봉누도 내 그룹인 시민의힘을 창설하게 되었다. 다만 시민들을 위한다는 것과는 달리, 정작 시민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북부에서 큰 고생과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간신히 시민권을 손에 넣어 남부로 내려온 일반 시민[* 봉누도 1일차는 별다른 제약이 없는 퍼지데이였기에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2일차부터 시민권 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남부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시민권이 필수였고, 풍요로운 남부의 생활을 잊지 못한 이들이 장벽을 뛰어넘어 남부로 밀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당시 청장 김봉남의 강경 대처 명령에 따라 벌금 100만 원과 구금 1시간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상당히 가혹한 처벌을 내리며 이들을 막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민권 포인트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후원을 통한 API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이른 바 대기업이라 불리는 이들 역시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돈을 벌고 시민권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들과 달리 현상백은 북부 입성 초기에 큰 후원을 받으며 남부 시민권을 손쉽게 손에 넣고 남부에 내려와 정착한, 이른바 황제 시민이라 불리는 부류였기 때문이었다.[* 정치인이 되고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갱들과 사업자들을 보고 "그 정도 사람들이 아닌데 왜 저렇게 고압적이냐."라고 말했는데 사업자와 갱단들은 일반 시민들이 돈을 벌어 수천만 ~ 억 단위의 돈으로 만든 단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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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2·6 갱단·경찰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단순히 흩어져 있는 시민들 개개인을 설득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시위 핵심 인물들과 함께 시민을 위한 조직이자 봉누도 내 그룹인 시민의힘을 창설하게 되었다. 다만 시민들을 위한다는 것과는 달리, 정작 시민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북부에서 큰 고생과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간신히 시민권을 손에 넣어 남부로 내려온 일반 시민[* 봉누도 1일차는 별다른 제약이 없는 퍼지데이였기에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2일차부터 시민권 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남부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시민권이 필수였고, 풍요로운 남부의 생활을 잊지 못한 이들이 장벽을 뛰어넘어 남부로 밀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당시 청장 김봉남의 강경 대처 명령에 따라 벌금 100만 원과 구금 1시간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상당히 가혹한 처벌을 내리며 이들을 막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민권 포인트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후원을 통한 API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이른 바 대기업이라 불리는 이들 역시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돈을 벌고 시민권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들과 달리 현상백은 북부 입성 초기에 큰 후원을 받으며 남부 시민권을 손쉽게 손에 넣고 남부에 내려와 정착한, 이른바 황제 시민이라 불리는 부류였기 때문이었다.[* 정치인이 되고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갱들과 사업자들을 보고 "그 정도 사람들이 아닌데 왜 저렇게 고압적이냐."라고 말했는데 사업자와 갱단들은 일반 시민들이 돈을 벌어 수천만 ~ 억 단위의 돈으로 만든 단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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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민들을 위한다는 나름의 신념과 이를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추진력, 그리고 대중을 설득하는 화술만은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정상적인 선거전을 치르면 누구나 당연히 봉누도의 도지사로 당선될 것이라 생각했던 유력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백의 정치 인생은 라이벌인 오승철이 일으킨 12월 9일 군사반란으로 인해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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