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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 대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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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79년 이후 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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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수비오 산은 서기 79년 대분화 이후로도 끊임없이 활동을 이어갔다. 로마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화산은 주기적인 분화로 수많은 지역을 뒤덮었으며, 때로는 사람들에게 재앙을, 때로는 기름진 토양을 제공하는 자연의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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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3년, 역사학자 카시우스 디오가 생존했던 시기에 또 한 차례의 분화가 일어났으며, 472년에는 엄청난 양의 화산재를 내뿜어 무려 1,220km 떨어진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날아갔다. 이 화산재는 하늘을 가려 태양빛을 흐리게 만들었고, 먼 타지에서도 베수비오윽 존재감을 생생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512년의 분화는 더욱 심각하여, 화산 근처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에 따라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는 이들에게 세금 면제 혜택을 주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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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도 베수비오는 여전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787년, 968년, 991년, 999년, 1007년, 1036년에 걸쳐 크고 작은 분화가 반복되었으며, 1036년에는 처음으로 용암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13세기 말경부터 화산은 점차 조용해졌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다시금 이 땅에 포도밭과 정원을 가꾸며 생업을 이어갔다. 심지어 분화구 내부에도 관목이 자라나는 등, 사람들은 화산이 다시는 분화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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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평온함은 1631년 12월, 갑작스럽게 발생한 대규모 분화로 무너져 내렸다. 이때 화산은 수많은 마을을 집어삼킬 정도로 엄청난 용암류를 분출했으며, 더불어 화산이류까지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로 베수비오의 활동은 더욱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도 화산은 꾸준히 분화를 이어갔으며, 1660년, 1682년, 1694년, 1698년, 1707년, 1737년, 1760년, 1767년, 1779년, 1794년 등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강력한 분화가 발생했다. 용암은 마을을 덮고, 화산재는 대지를 뒤덮었으며, 하늘은 다시 한 번 검은 연기에 감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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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도 베수비오 화산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1822년, 1834년, 1839년, 1850년, 1855년, 1861년, 1868년, 1872년까지 연속적인 분화가 이어졌으며, 20세기에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1906년, 1926년, 1929년에는 다시 한번 강력한 분화가 일어나 인근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고, 1944년 마지막으로 분화하면서 화산 활동이 잠시 멈춘 상태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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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수비오 화산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과 조우하며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화산의 활동성과 파괴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인류의 문명과 운명을 뒤흔들었고, 한편으로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여 농경사회의 발전을 돕기도 하는등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