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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20 | || '''국가원수''' ||<-3>[[가독부]], [[대왕]][* 문헌에 따르면 그 군주를 대면할 때는 성(聖),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는 기하(基下)로 존칭하였다고 한다. 금석문상에서는 "황상(皇上)"으로 지칭되며 그 부인은 [[황후]]라는 칭호를 가졌다.], [[황제]][* 『遼史』卷38 志8 地理志2 東京道 東京遼陽府 “十有二世至彝震, '''僭號改元''' 擬建宮闕, 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爲遼東盛國”] || |
| 21 | 21 | || '''주요 군주''' ||<-3>[[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 (698~719)[br][[무왕(발해)|무왕]](武王) 대무예(大武藝) (719~737)[br][[문왕(발해)|문왕]](文王) 대흠무(大欽茂) (737~793)[br][[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818~830) || |
| 22 | 22 | || '''국성''' ||<-3>[[대#s-1.1]](大) || |
| 23 | || '''언어''' ||<-3>불명[* 고구려어, 말갈어, '발해어'라는 용어까지 여러가지 가설이 제시된다. 다만 발해라는 나라 자체가 영토가 넓고, 여러 종족들이 함께 산 다민족 국가였기에 여러 계통의 언어가 같이 쓰인것으로 보인다. 신라어와 같은 계통의 예맥계 언어인 발해어와, [[퉁구스어족]] 계통의 여러 언어, 북시베리아어 계통의 여러언어 , [[몽골어족]] 계통의 여러언어([[거란어]]를 비롯한 준몽골어족 포함), [[중고한어]], [[소그드어]] 등.][* '발해인의 언어'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해 확실시하기는 힘들지만 몇몇 파편적 기록을 통해 [[신라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740년 일본 조정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가질 때 [[http://db.history.go.kr/id/jm_002r_0140_0090|발해 사신과 신라학어(新羅學語)를 행렬에 함께 세웠는데]] 이를 일본 측이 신라학어, 즉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간 신라인 학생에게 발해 사신의 통역을 맡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
| 24 | || '''민족''' ||<-3>발해인, 말갈인[* 여러 기록을 통해서 '발해인'과 '말갈인'이 당대에 구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http://db.history.go.kr/id/jm_002r_0170_0070|속일본기1]],[[http://db.history.go.kr/id/jm_002r_0360_0220|속일본기2]]. 즉 발해는 여러가지 종족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국가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발해인'은 고구려인, [[말갈]], [[여진]], [[실위]], [[소그드인]] 등으로 추정. 혹은 단순히 발해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발해인이 아니라 구 고구려, 구 말갈과 구별되는 발해인 혹은 발해족이라는 독자적인 종족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단, 발해인들끼리 얼마나 공통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발해인'의 정체성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단언할 수는 없다. 단지 서남부의 고구려인([[한국어족]])과 동북부의 말갈인([[퉁구스어족]])이 연합한 다종족 국가라는 주장도 있다.] || | |
| 23 | || '''언어''' ||<-3>불명[* 고구려어, 말갈어, '발해어'라는 용어까지 여러 가지 가설이 제시된다. 다만 발해라는 나라 자체가 영토가 넓고, 여러 종족들이 함께 산 다민족 국가였기에 여러 계통의 언어가 같이 쓰인것으로 보인다. 신라어와 같은 계통의 예맥계 언어인 발해어와, [[퉁구스어족]] 계통의 여러 언어, 북시베리아어 계통의 여러언어 , [[몽골어족]] 계통의 여러언어([[거란어]]를 비롯한 준몽골어족 포함), [[중고한어]], [[소그드어]] 등.][* '발해인의 언어'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해 확실시하기는 힘들지만 몇몇 파편적 기록을 통해 [[신라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740년 일본 조정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가질 때 [[http://db.history.go.kr/id/jm_002r_0140_0090|발해 사신과 신라학어(新羅學語)를 행렬에 함께 세웠는데]] 이를 일본 측이 신라학어, 즉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간 신라인 학생에게 발해 사신의 통역을 맡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
| 24 | || '''민족''' ||<-3>발해인, 말갈인[* 여러 기록을 통해서 '발해인'과 '말갈인'이 당대에 구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http://db.history.go.kr/id/jm_002r_0170_0070|속일본기1]],[[http://db.history.go.kr/id/jm_002r_0360_0220|속일본기2]]. 즉 발해는 여러 가지 종족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국가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발해인'은 고구려인, [[말갈]], [[여진]], [[실위]], [[소그드인]] 등으로 추정. 혹은 단순히 발해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발해인이 아니라 구 고구려, 구 말갈과 구별되는 발해인 혹은 발해족이라는 독자적인 종족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단, 발해인들끼리 얼마나 공통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발해인'의 정체성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단언할 수는 없다. 단지 서남부의 고구려인([[한국어족]])과 동북부의 말갈인([[퉁구스어족]])이 연합한 다종족 국가라는 주장도 있다.] || | |
| 25 | 25 | || '''종교''' ||<-3>[[불교]], [[샤머니즘]], [[도교]], 기타 토착신앙 || |
| 26 | 26 | || '''현재 국가''' ||<-3>[include(틀:국기, 국명=북한)][br][include(틀:국기, 국명=중국)][br][include(틀:국기, 국명=러시아)]|| |
| 27 | 27 | ||<-4><bgcolor=#2531a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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