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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Skai TV 선정 위대한 그리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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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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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fff,#2d2f3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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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96대 황제[br]{{{+1 바실리오스 2세}}}[br]Βασίλειος 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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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FFF,#FCE774><nopad>[[파일:바실리오스 2세.webp|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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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00> '''이름''' ||바실리오스 2세[br]Βασίλειος 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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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망''' ||1025년 12월 15일 (향년 67세) ||
1717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 ||
1818
||<|2> '''재위 기간''' ||<bgcolor=#f0f0f0,#2d2f34>{{{#000,#fff 로마 황제}}} ||
19
||[[976년]] [[1월 10일]] ~ [[1025년]] [[12월 15일]] '''(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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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년]] [[1월 10일]] ~ [[1025년]] [[12월 15일]] '''(49년)''' ||
2020
|| '''전임자''' ||[[요안니스 1세]] ||
2121
|| '''후임자''' ||[[콘스탄티노스 8세]] ||
2222
|| '''부모''' ||[[아버지|부황]] : [[로마노스 2세]][br][[어머니|모후]] : [[테오파노(10세기)|테오파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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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καὶ νῦν ὁρῶν, ἄνθρωπε, τόνδε τὸν τάφον ||
6060
|| 그러니 이제, 이 무덤을 바라보는 자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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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εὐχαῖς ἀμείβου τὰς ἐμὰς στρατηγίας. ||
62
|| 나의 전쟁과 원정을 기도로 기억하고 감사하라.[*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주지 않겠는가?라고 번역된 내용이 있지만 실제로는 명령어, 즉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되어있다. 이는 즉 바실리오스 황제 스스로도 자신의 업적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뜻을 존중해 이 번역에서는 해당 내용처럼 번역하였다.][* 그리고 유추되는 황제의 성격상 자신이 로마인을 위해 이뤄놓은 업적을 생각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절대 부탁할 사람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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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전쟁과 원정을 기도로 기억하고 감사하라.[*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주지 않겠는가?라고 번역된 내용이 있지만 실제로는 명령어, 즉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되어있다. 이는 즉 바실리오스 황제 스스로도 자신의 업적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뜻을 존중해 이 번역에서는 해당 내용처럼 번역하였다.][* 그리고 유추되는 황제의 성격상 자신이 로마인을 위해 이뤄놓은 업적을 생각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절대 부탁할 사람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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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에 바실리오스 2세의 묘비문을 올린 것은, 이 묘비문이야말로 황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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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스 2세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 976년부터 1025년까지 제위를 지냈다. 그는 강력한 군사 지도력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을 유지했다. 특히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한 업적으로 인해 불가리아인의 학살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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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으며,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서쪽에서는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쪽에서는 아랍 세력과 투르크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또한, 내정에서도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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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으며,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서쪽에서는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쪽에서는 아랍 세력과 [[투르크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또한, 내정에서도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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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치세 동안 [[동로마 제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정에 올랐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회자되었다.[* 그의 업적이 오래도록 회자된 이유는 바실리우스 2세의 사후 얼마 안되어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인 만지케르트 전투를 겪었고 이 후 소아시아를 상실하는 등 로마인들은 최악의 시기를 인내해야 했기 때문이다.]바실리오스 2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황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끝없는 싸움을 선택한 자였다.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묘비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검과 창을 놓지 않았던 황제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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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치세 동안 [[동로마 제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정에 올랐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회자되었다.[* 그의 업적이 오래도록 회자된 이유는 바실리우스 2세의 사후 얼마 안되어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인 [[만지케르트 전투]]를 겪었고 이 후 소아시아를 상실하는 등 로마인들은 최악의 시기를 인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실리오스 2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황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끝없는 싸움을 선택한 자였다.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묘비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검과 창을 놓지 않았던 황제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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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면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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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황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으며, 외형과 성격 모두에서 당대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제국의 위상을 절정으로 끌어올렸고, 황제 개인의 성격과 기질이 국가 운영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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