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8 vs r29 | ||
|---|---|---|
| ... | ... | |
| 41 | 41 | || ἀφ’ οὗ βασιλεὺς οὐρανῶν κέκληκέ με || |
| 42 | 42 | ||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 |
| 43 | 43 | || αὐτοκράτορα γῆς, μέγαν βασιλέα· || |
| 44 | || 이 땅의 황제, 위대한 왕으로 삼으신 후부터. || | |
| 44 | || [[동로마 제국|이 땅]]의 황제, 위대한 왕으로 삼으신 후부터. || | |
| 45 | 45 | || ἀλλ’ ἀγρυπνῶν ἅπαντα τὸν ζωῆς χρόνον || |
| 46 | 46 | || 나는 생애 내내 깨어 있었으며, || |
| 47 | 47 | || Ῥώμης τὰ τέκνα τῆς Νέας ἐρυόμην || |
| 48 | || 새로운 로마의 자손들을 보호하였노라. || | |
| 48 | || [[동로마인|새로운 로마의 자손]]들을 보호하였노라. || | |
| 49 | 49 | || ὁτὲ στρατεύων ἀνδρικῶς πρὸς ἑσπέραν, || |
| 50 | 50 | || 때로는 서쪽으로 용맹하게 원정을 떠났고, || |
| 51 | 51 | || ὁτὲ πρὸς αὐτοὺς τοὺς ὅρους τοὺς τῆς ἕω, || |
| ... | ... | |
| 53 | 53 | || ἱστῶν τρόπαια πανταχοῦ γῆς μυρία· || |
| 54 | 54 | || 세상의 곳곳에 수많은 승전비를 세웠노라. || |
| 55 | 55 | || καὶ μαρτυροῦσι τοῦτο Πέρσαι καὶ Σκύθαι, || |
| 56 | || 이에 대해 페르시아인과 스키타이인이 증언하리라. || | |
| 56 | || 이에 대해 [[페르시아인]]과 [[스키타이인]]이 증언하리라. || | |
| 57 | 57 | || σὺν οἷς Ἀβασγός, Ἰσμαήλ, Ἄραψ, Ἴβηρ· || |
| 58 | 58 | || 아바스고스, 이스마일, 아랍인, 이베리아인도 함께. || |
| 59 | 59 | || καὶ νῦν ὁρῶν, ἄνθρωπε, τόνδε τὸν τάφον || |
| ... | ... | |
| 64 | 64 | |
| 65 | 65 | 바실리오스 2세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 976년부터 1025년까지 제위를 지냈다. 그는 강력한 군사 지도력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을 유지했다. 특히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한 업적으로 인해 불가리아인의 학살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
| 66 | 66 | |
| 67 | 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으며,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서쪽에서는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쪽에서는 아랍 세력과 [[ | |
| 67 | 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으며,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서쪽에서는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쪽에서는 아랍 세력과 [[튀르크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또한, 내정에서도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 |
| 68 | 68 | |
| 69 | 69 | 그의 치세 동안 [[동로마 제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정에 올랐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회자되었다.[* 그의 업적이 오래도록 회자된 이유는 바실리우스 2세의 사후 얼마 안되어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인 [[만지케르트 전투]]를 겪었고 이 후 소아시아를 상실하는 등 로마인들은 최악의 시기를 인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실리오스 2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황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끝없는 싸움을 선택한 자였다.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묘비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검과 창을 놓지 않았던 황제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
| 70 | 70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