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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vs 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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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
17세기 대부분 동안 유지된 상대적 평화는 인도 경제의 확장을 촉진하였다. 인도양을 무대로 한 유럽 세력의 확대와 인도산 원자재 및 가공품에 대한 수요 증가는 막대한 부를 무굴 왕실에 집중시켰다. 이로 인해 회화, 문학, 직물, 건축 등의 예술 분야에서 눈에 띄는 후원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샤 자한 황제 시대에는 타지마할을 포함한 다양한 건축 유산이 남겨졌다. 이들 가운데 아그라 성, 파테푸르 시크리, 델리의 붉은 성, 후마윤 능, 라호르 성, 샬라마르 정원, 타지마할 등이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717
1818
제국의 명칭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국호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아인 이 악바리』에는 제국이 '힌두스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무굴 제국 행정 기록에는 '힌두스탄의 영토', '힌드의 나라', '알힌드 술탄국'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는 자국을 '힌도스탄의 땅'이라 지칭하였으며, 동시대 중국 기록에도 '힌두스탄'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면 서구권에서는 황제와 제국 모두를 '무굴'이라 불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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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실 ==
2020
무굴 왕조의 자칭 명칭은 '구르카니얀'으로, 이는 자신들이 몽골계 정복자 [[티무르]]의 후손임을 강조한 호칭이다. '구르칸'은 [[칭기즈 칸]] 계열 공주와 혼인한 사람에게 붙는 명칭으로, 티무르는 이를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았다. '무굴'이라는 단어는 원래 '몽골'의 인도-페르시아어형으로, 엄밀히 말하면 이 왕조의 초기 구성원들은 몽골인이 아니라 차가타이 투르크계 출신이었다. 이들을 무굴이라 부르게 된 배경에는 델리 술탄국을 지배하던 아프간계 엘리트와 구별하려는 인도의 정치적 맥락이 있었다. 그러나 무굴이라는 명칭의 사용은 오늘날에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일부 학자는 이 왕조를 '티무르 왕조' 또는 '인도-티무르 왕조'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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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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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굴 황제|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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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무굴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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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무굴 제국의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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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러보기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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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인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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