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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39 | 동방의 노바 로마 건설 이후로도 제국 서부에서만큼은 도시 로마가 법적 수도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나, 동서 분열 시기[* 엄밀히 말하면 분열이 아니라 하나의 로마 제국을 두 황제가 동서로 영역을 나눠서 통치하는 것이었다.]의 [[서로마 제국]]에서도 메디올라눔(밀라노), 라벤나 등 북부 지방도시를 실질적 수도 삼아 통치하는 일이 잦아졌고, 410년과 455년에는 각각 서고트족과 반달족에게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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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이 과정에서 교황을 위시한 [[가톨릭 교회]]가 각종 전란으로 피폐해진 [[로마인|로마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성 레오 1세를 비롯한 몇몇 교황들은 이민족과의 정치적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
| 42 | === 중세 초기 게르만 왕국 === | |
| 42 | === 중세 로마시 === | |
| 43 | ==== 중세 초기 게르만 왕국 ==== | |
| 43 | 44 | 476년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 상실이었다.] [[오도아케르]]는 도시 로마가 가진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위상을 존중하여 별다른 파괴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고, 이는 493년 오도아케르를 타도하며 건국된 [[동고트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 44 | === [[동로마 제국]]과 [[로마 공국]] === | |
| 45 | ==== [[동로마 제국]]과 [[로마 공국]] ==== | |
| 45 | 46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로마의 로마시에 대한 인식)] |
| 46 | 47 |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하의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은 대대적인 고토 수복 전쟁을 전개하여 [[동고트 왕국]]을 정벌하며 도시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를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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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49 | 그러나 이 과정에서 로마군과 동고트군이 몇 차례에 걸쳐 도시를 뺏고 빳기는 공방전을 벌여 로마는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인구 역시 크게 감소하여 폐허나 다름없는 지경까지 전락했는데, 로마가 다시 고대와 같은 대도시의 위상을 회복하는데는 훗날 [[교황령]]이 성립되고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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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1 | 이 무렵 로마는 정치적으로 이탈리아 북부 라벤나에 치소를 둔 총독의 통치를 받았으나, 종교적으로는 [[교황]]의 권위 역시 막대했고, 동로마 제국 및 라벤나 총독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교황은 점진적으로 권력을 강화하여 사실상의 자치령인 [[로마 공국]]을 다스렸다. |
| 51 | === [[교황령]] === | |
| 52 | ==== [[교황령]]의 성립과 발전 ==== | |
| 52 | 53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교황령)] |
| 53 | 54 | [[이탈리아]]에 대한 [[동로마 제국]]의 통제력 약화와 [[교황]]과 프랑크 왕국의 유착 등을 거친 끝에 756년 [[교황령]]이 성립되었고, 이후 로마는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인 종교도시로서 인구를 다시 번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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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56 | 다만 이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아서 843년에는 무슬림 해적이 로마 외곽 지역을 약탈하는 위기가 있었고, 이후에는 노르만족 로베르 키스카르,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등 세속 군주들과 교황의 갈등이 격화될 때 막심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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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 르네상스 시대 === | |
| 57 | 58 |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로마는 예술의 도시로서도 번영했는데,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와 갈등을 빚던 황제 카를 5세의 사주를 받은 용병들이 로마를 대대적으로 약탈함으로써, 네로 황제 시대의 대화재나 고대 말기 및 중세 초기 게르만족의 약탈 당시보다도 더한 인명 및 물적 피해를 입으며 로마에서의 르네상스는 사실상 종식되었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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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 근현대 로마 === | |
| 60 | ==== 교황령의 위기와 이탈리아 통일 ==== | |
| 59 | 61 | 혁명의 시대인 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몇 차례에 걸쳐 프랑스 제1공화국 및 나폴레옹의 제1제국이 교황령을 멸망시키고 괴뢰국[* [[로마 공화국(18세기)]].]을 세우거나 프랑스령으로 병합하기도 했으며[* 1809년~1814년.], 1848년 혁명이 전유럽을 휩쓸던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이탈리아 통일운동가들이 교황을 축출하고 [[로마 공화국(1849년)|로마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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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63 | 이러한 일련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교황령은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1861년 이탈리아 대부분을 통일한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며 위태로워졌고, 교황령에 주둔하면서 보호해주던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2제국 군대가 1870년 보불전쟁으로 인해 철수하자, 이탈리아 왕국군이 로마에 진주, 형식적인 주민투표를 거쳐 합병을 선언하며 교황령은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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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 | |
| 63 | 65 | 1870년 [[교황령]]을 합병한 [[이탈리아 왕국]]은 1871년, 기존 수도인 피렌체에서 로마로 천도함으로써, 로마는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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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67 | 2차 대전 시기인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했을 때는 독일 국방군이 점령하여 괴뢰국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고, [[사보이아 왕조|이탈리아 왕실]] 및 정부는 남부 이탈리아의 브린디시, 살레르노 등으로 몽진했는데, 1944년 연합군이 로마를 탈환하자 복귀하여 다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되찾았고, 이는 1946년 국민투표로 왕정이 폐지되며 수립된 [[이탈리아 공화국]]에서도 유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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