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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9 | 이 무렵 로마는 정치적으로 이탈리아 북부 라벤나에 치소를 둔 총독의 통치를 받았으나, 종교적으로는 [[교황]]의 권위 역시 막대했고, 동로마 제국 및 라벤나 총독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교황은 점진적으로 권력을 강화하여 사실상의 자치령인 [[로마 공국]]을 다스렸다. |
| 50 | 50 | === 교황령 === |
| 51 | 51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교황령)] |
| 52 | [[이탈리아]]에 대한 [[동로마 제국]]의 통제력 약화와 [[교황]]과 프랑크 왕국의 유착 등을 거친 끝에 756년 [[교황령]]이 성립되었고, 이후 로마는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인 종교도시로서 인구를 다시 번영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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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다만 이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아서 843년에는 무슬림 해적이 로마 외곽 지역을 약탈하는 위기가 있었고, 이후에는 노르만족 로베르 키스카르,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등 세속 군주들과 교황의 갈등이 격화될 때 막심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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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로마는 예술의 도시로서도 번영했는데,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와 갈등을 빚던 황제 카를 5세의 사주를 받은 용병들이 로마를 대대적으로 약탈함으로써, 네로 황제 시대의 대화재나 고대 말기 및 중세 초기 게르만족의 약탈 당시보다도 더한 인명 및 물적 피해를 입으며 로마에서의 르네상스는 사실상 종식되었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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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혁명의 시대인 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몇 차례에 걸쳐 프랑스 제1공화국 및 나폴레옹의 제1제국이 교황령을 멸망시키고 괴뢰국[* [[로마 공화국(18세기)]].]을 세우거나 프랑스령으로 병합하기도 했으며[* 1809년~1814년.], 1848녅 혁명이 전유럽을 휩쓸던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이탈리아 통일운동가들이 교황을 축출하고 [[로마 공화국(1849년)|로마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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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이러한 일련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교황령은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1861년 이탈리아 대부분을 통일한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며 위태로워졌고, 교황령에 주둔하면서 보호해주던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2제국 군대가 1870년 보불전쟁으로 인해 철수하자, 이탈리아 왕국군이 로마에 진주, 형식적인 주민투표를 거쳐 합병을 선언하며 교황령은 멸망했다. | |
| 52 | 61 | === 근현대: 이탈리아의 수도 === |
| 53 | 62 | == 지리 == |
| 54 | 63 | === 행정구역: 무니치피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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