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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37 | 그러나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에 이르러 로마는 잦은 내전으로 인해 인프라가 망가지고 인구가 감소하며 쇠퇴했고, 후대로 갈수록 로마가 아닌 지방도시를 실질적 수도로 삼아 통치하는 [[로마 황제|황제]]가 늘어났는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예 동방에 [[노바 로마]](Nova Roma)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하여 원래의 로마와 비슷한 법적 지위와 위상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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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동방의 노바 로마 건설 이후로도 제국 서부에서만큼은 도시 로마가 법적 수도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나, 동서 분열 시기[* 엄밀히 말하면 분열이 아니라 하나의 로마 제국을 두 황제가 동서로 영역을 나눠서 통치하는 것이었다.]의 [[서로마 제국]]에서도 메디올라눔(밀라노), 라벤나 등 북부 지방도시를 실질적 수도 삼아 통치하는 일이 잦아졌고, 410년과 455년에는 각각 서고트족과 반달족에게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 |
| 39 | 동방의 노바 로마 건설 이후로도 제국 서부에서만큼은 도시 로마가 법적 수도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나, 동서 분열 시기[* 엄밀히 말하면 분열이 아니라 하나의 로마 제국을 두 황제가 동서로 영역을 나눠서 통치하는 것이었다.]의 [[서로마 제국]]에서도 [[메디올라눔]](밀라노), [[고대 라벤나|라벤나]] 등 북부 지방도시를 실질적 수도 삼아 통치하는 일이 잦아졌고, 410년과 455년에는 각각 서고트족과 [[반달족]]에게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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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이 과정에서 교황을 위시한 [[가톨릭 교회]]가 각종 전란으로 피폐해진 [[로마인|로마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성 레오 1세를 비롯한 몇몇 교황들은 이민족과의 정치적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
| 42 | 42 | === 중세 로마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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