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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결론적으로, 동로마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로마 제국의 연속성을 유지한 유일한 국가였으며, 이를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지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신념이었으며, 제국의 존재 자체가 로마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 후 동로마는 서로마의 제위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여겼고, 그 증거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이 있다.] |
| 30 | 30 |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
| 31 |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서 [[여제]] 이리니가 즉위한 이후 적법한 남성 [[로마 황제]]가 없다는 이유로 교황에게 대관받아 로마 황제를 칭했다. | |
| 31 |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서 [[여제]] 이리니가 즉위한 이후 적법한 남성 [[로마 황제]]가 없다는 이유로 [[교황]]에게 [[대관식|대관]]받아 로마 황제를 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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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33 | 이민족 군주인 그가 황제를 칭한 것을 당대의 [[동로마인|로마인]]들이 쉽사리 인정할리가 없었기에, 그는 이리니 여제와의 결혼을 통해 진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려 핬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봉기가 일어나 여제가 축출되고 니키포로스 1세가 즉위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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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39 | 오토 대제의 아들인 오토 2세는 동로마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딸 테오파노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3세가 제위를 계승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외손인 황제가 등장했고, 이후의 여러 황제들도 동로마 황실과 통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황제들은 신성 로마 황제들의 정통성까진 인정하지 않아서 서방 황제들이 외교 문서에서 로마 황제를 칭하는 것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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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동로마를 비롯한 동방 정교회 세계나 다른 문화권의 입장과는 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는 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의 | |
| 41 | 동로마를 비롯한 동방 정교회 세계나 다른 문화권의 입장과는 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는 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의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기도 했고, 16세기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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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는 더이상 자신들보다 정통성이 앞서는 동로마가 남아있지 않으니 유일한 로마 제국이라 자처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는데, 동로마 제위 계승을 표방한 [[오스만 제국]], 루스 차르국(이후의 [[러시아 제국]]) 등은 신성 로마 제국 스스로는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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