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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따라서 동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 제국의 계승권은 자신들에게만 속해 있었다. 서방에서 등장한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의 정통성을 가질 수 없으며, 이는 단순한 군사적·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동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이는 13세기까지도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오스만 제국조차도 동로마의 황제 칭호를 계승하는 방식으로 로마의 유산을 인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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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이는 [[동로마인]] 스스로의 입장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시각으로도 마찬가지였는데, 발칸 반도 및 동유럽 일대의 슬라브 국가들과, 중근동의 이슬람 국가들, 튀르크계 유목민 국가들은 카롤루스의 칭제와 상관 없이 계속 동로마를 로마라 불렀으며, 카롤루스와 그가 세운 [[신성 로마 제국|서방 제국]] 출신들은 프랑크인이라 부르며 구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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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또한 카롤루스의 칭제 이후의 서방인들도 동로마가 로마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아서, 4차 십자군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 로마 제국의 3/8의 주인[*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칭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15세기 서방 국가들을 순방한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8세를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그를 '[[로마인의 황제]]이자 왕'으로 표현한 주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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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7 | 결론적으로, 동로마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로마 제국의 연속성을 유지한 유일한 국가였으며, 이를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지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신념이었으며, 제국의 존재 자체가 로마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 후 동로마는 서로마의 제위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여겼고, 그 증거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이 있다.] |
| 28 |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 |
| 29 |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서 [[여제]] 이리니가 즉위한 이후 적법한 남성 [[로마 황제]]가 없다는 이유로 교황에게 대관받아 로마 황제를 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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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이민족 군주인 그가 황제를 칭한 것을 당대의 [[동로마인|로마인]]들이 쉽사리 인정할리가 없었기에, 그는 이리니 여제와의 결혼을 통해 진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려 핬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봉기가 일어나 여제가 축출되고 니키포로스 1세가 즉위하는 계기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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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카롤루스는 니키포로스 왕조 하의 동로마 제국과 전쟁을 벌이다 니키포로스 1세의 사위로서 즉위한 미하일 1세 랑가베스와 평화 협정을 체결, 서방의 황제 칭호는 인정받되 로마 황제로는 인정받지 않는 형태로 타협을 맺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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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이로써 카롤루스의 제국은 황제국이되 로마 제국은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존속하게 되었고, 이는 카롤루스 왕조 단절 이후 오토 대제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독일 왕국]])을 통해 재편된 962년 이후의 [[신성 로마 제국|서방 제국]]에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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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오토 대제의 아들인 오토 2세는 동로마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딸 테오파노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3세가 제위를 계승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외손인 황제가 등장했고, 이후의 여러 황제들도 동로마 황실과 통혼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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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와 서방 제국이 우호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 동로마가 서방 제국을 동등한 로마 제국으로 인정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동로마는 서방 제국의 황제들이 자국과의 외교에서 로마를 칭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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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이러한 동로마의 입장과는 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는 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의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기도 했고, 16세기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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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또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는 더이상 자신들보다 정통성이 앞서는 동로마가 남아있지 않으니 유일한 로마 제국이라 자처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으며, 동로마 제위 계승을 표방한 오스만 제국, 루스 차르국(이후의 러시아 제국) 등은 신성 로마 제국 스스로는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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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이와 같이 신성 로마 제국은 동방 정교회권이나 타 문화권의 입장과는 관계 없이,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로마 제국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해나갔으며, 이는 30년 전쟁으로 제국이 수많은 영방국가들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로 전락한 이후에도 명분상으로는 지속되었다. | |
| 26 | 46 | ===== 프랑스 제국 ===== |
| 27 | 47 | ===== 오스트리아 제국 ===== |
| 28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 |
| 29 | 48 | ===== 독일 제국 ===== |
| 30 | 49 | === [[동로마 제국|동로마 황제위]] 계승 주장 === |
| 31 | 50 | ==== 불가리아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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