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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3 | 이는 [[동로마인]] 스스로의 입장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시각으로도 마찬가지였는데, 발칸 반도 및 동유럽 일대의 슬라브 국가들과, 중근동의 이슬람 국가들, 튀르크계 유목민 국가들은 카롤루스의 칭제와 상관 없이 계속 동로마를 로마라 불렀으며, 카롤루스와 그가 세운 [[신성 로마 제국|서방 제국]] 출신들은 프랑크인이라 부르며 구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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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또한 카롤루스의 칭제 이후의 서방인들도 동로마가 로마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아서, 4차 십자군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 |
| 25 | 또한 카롤루스의 칭제 이후의 서방인들도 동로마가 로마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아서, 4차 십자군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로마니아 제국[* [[라틴 제국]]이 자칭한 국호.], 로마 제국의 3/8의 주인[*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칭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15세기 서방 국가들을 순방한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8세를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그를 '[[로마인의 황제]]이자 왕'으로 표현한 주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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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결론적으로, 동로마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로마 제국의 연속성을 유지한 유일한 국가였으며, 이를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지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신념이었으며, 제국의 존재 자체가 로마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 후 동로마는 서로마의 제위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여겼고, 그 증거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이 있다.] |
| 28 | 28 |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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