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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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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제국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7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까지 존속한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 12세기 말부터 14세기 후반까지 존재했던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이다. 이 두 시기는 각각 다른 정치적·군사적 상황 속에서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었으며, 동로마 황제위 계승과 관련한 입장 또한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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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불가리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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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불가리아 제국(681927)의 차르 시메온 가장 적극적으로 동로마 황제위를 요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통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 했으며, 동로마 황실과의 혼인 동맹을 통해 정통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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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불가리아 제국(681~927)의 차르 시메온 1세는 동로마 황제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불가리아 제국의 군사적·문화적 위상을 확립하는 한편, 동로마 제국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통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나아가 스스로 로마 황제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기를 원다. 이를 위해 그는 군사적 침략과 외교적 전략을 병행하였으며, 동로마 황실과의 혼인 동맹을 통해 합법적인 정통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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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 1세는 자신"불가아인과 로마인의 황제"라 칭하며, 동로마 황대등한 지위를 주장다. 기존의 동로마 제국 인정리아 주의 단순한 "카간" 또는 "왕"의 칭호를 뛰어넘으로, 불가리아 제국이 동로마 제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 동로마 황제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으며, 시메온후계자인 페타르 1세(재위 927~969) 동로마 황실과의 혼인통해 제한 황제지위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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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 1세는 어린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받으며 그 문화를 익혔고, 동로마 황실의 정치 구조외교 방식을 깊이 이해고 있었다. 불가리아가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 대등지위를 져야 한다고 장하며, 자신통치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다. 군사적으로 매우 능력 있는 지도자로, 동로마 제국과차례 전쟁에서 승리거두며 불가리아 제국세력을 확장하였다. 특히 917 불가로피곤 전투 동로마 결정으로 격파하면서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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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세기 불가리아가 동로마 제국 완전히 병합되면서, 제1차 아 제국의 황제 계승론은 사라졌다. 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완전히 흡수였고, 이 세기 불가리아 역은 마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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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 1세는 자신의 승리를 정치적으로도 활용했다. 그는 존의 불가리아 군주가 사용했던 "카간" 또는 "왕"이라는 칭호를 뛰어넘어 자신을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황제"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불리아가 더 이상 동로마 제국 영향력 아래 있는 니라,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서 독자적인 황제권을 주장하는 국가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메온은 동로마 제국 전통적인 황제 권위를 계승하는 방식으로 불가리아 위상을 강화려 했으며, 이 위해 동로마 황제와등한위를 공식적으인정받고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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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로마 황제들은 이러한 시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불가리아의 강성함을 위협으로 여겼으며, 시메온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직접 점령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견제하는 데 주력했다. 결국 시메온은 수도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의 야심은 실현되지 못한 채 927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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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의 후계자인 페타르 1세(재위 927~969)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고, 동로마 황실과 혼인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불가리아 군주의 지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불가리아 군주는 제한적이나마 동로마 황제의 승인 아래 황제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 제국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불가리아 황제가 동로마 황제와 완전히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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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1세기 초[[바실리우스 2세]]에 의해 불가리아가 동로마 제국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위 계승론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은 1018년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를 제국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불가리아 지역은 동로마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불가리아의 독립적인 황제위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불가리아는 동로마의 행정 체제 속에 편입되었고,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총대주교 임명 등 불가리아 정교회에 대한 실권은 모두 황제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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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 1세의 야망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그의 통치는 불가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이후 불가리아의 독립성과 국가적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비록 불가리아가 동로마 황제위를 온전히 계승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력은 불가리아 제국이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과 경쟁하는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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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불가리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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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6)의 군주들은 이전 시기와는 달리 직접적인 군사적 정복보다는 외교적·정치적 수단을 통해 동로마 황제위와 관련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초창기를 이끈 아센 왕조의 군주들은 자신들을 독립적인 불가리아 황제로 선언하면서도, 동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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