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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립은 결국 1261년,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면서 종결되었다. 니케아 제국의 황제 미하일 8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동로마 제국을 재건하였고, 라틴 제국은 붕괴하였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전통이 라틴 제국의 지배보다 더 강력하게 유지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결국 라틴 제국은 동로마 황제위를 계승하려 했으나, 기존의 행정 체계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으며, 동방 정교회를 따르는 주민들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단명한 국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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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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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계승 문제는 동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더욱 복잡해졌고, 주변의 여러 강대국들이 자신을 로마의 정통 후계자로 내세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발칸반도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세르비아 제국은 니케아 제국과 더불어 동로마 황제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유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스테판 두샨의 통치 아래 세르비아 제국은 단순한 지역 강국이 아닌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서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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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는 본래 동로마 제국과 신하 관계를 유지하며 자치권을 인정받는 형태로 존재했으나, 13세기 후반부터 점차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4세기에 이르러 동로마 제국이 잇따른 내전과 외세의 압박으로 크게 약화되면서, 세르비아의 세력 확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안드로니코스 2세와 안드로니코스 3세, 이후 요한네스 5세와 요한네스 6세의 내전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졌으며, 이는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와 신흥 강국인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위협하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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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을 틈타 스테판 두샨은 1346년 세르비아 수도 스코페에서 황제로 즉위하면서,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는 단순한 왕국이 아닌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로, 명확한 동로마 계승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 칭호를 사용한다고 해서 단순히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었고, 두샨은 동로마 황제가 가진 종교적 권위를 차지하기 위해 세르비아 정교회의 독립을 선언하는 강수를 두었다. 기존 동로마 황제가 동방 정교회의 수호자로서 권위를 행사한 것처럼, 세르비아 총대주교가 자신을 정통 황제로 인정하도록 만들면서 황제의 종교적 권위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동방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세르비아 제국이 동로마 황제로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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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두샨은 단순히 칭호를 선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침공하여 마케도니아, 테살리아, 에피루스 등지를 차지하며 실질적으로 동로마의 중요한 영토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몇 가지 현실적인 장애물에 부딪혔다. 첫째,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군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일시적인 동맹을 고려했지만, 오스만 세력은 점점 강대해지면서 결국 세르비아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갔다. 둘째, 세르비아 제국 내부에서도 귀족들의 독립성이 강했고, 중앙집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제국의 통일성이 부족했다. 셋째, 1355년 스테판 두샨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의 원대한 계획은 실행되지 못한 채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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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샨 사후 그의 아들 스테판 우로슈 5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세르비아 제국은 급속도로 분열되었다. 지방의 귀족들은 점차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중앙 정부와의 연계를 약화시켰고, 제국은 강한 통합력을 유지하지 못한 채 무너져갔다. 결국 1371년 마리차 전투에서 세르비아 군대는 오스만 제국에게 대패하였고, 이는 세르비아 제국이 붕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동로마 제국은 세르비아의 위협에서 벗어났으나, 이후 오스만 제국의 압박을 받으며 결국 1453년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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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제국이 동로마 황위를 계승하려 했던 시도는 군사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실패하였으며, 이는 동로마 황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점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지 못한 점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황제 칭호를 선언하고, 정교회의 독립을 통해 종교적 정당성을 확보하며, 군사적 확장을 통해 동로마의 영토를 차지하려 했으나, 이러한 노력은 동로마 황제로서의 권위를 확립하기에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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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르비아 제국의 계승론은 일시적인 정치적 야망에 그쳤으며, 역사적으로도 실질적인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동로마의 붕괴와 함께 세르비아 역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스테판 두샨의 위대한 야망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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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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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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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적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로마 계승 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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