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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153 | 러시아 제국의 로마 계승론은 단순한 명분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군주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종교적 이념이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동로마 제국의 정신적·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유럽과 오스만 제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내부에서도 시대가 변하면서 계승론의 실질적 의미는 점차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로마 사상은 러시아의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었으며, 예카테리나 2세의 동로마 재건 계획과 같은 실질적인 시도로 이어지면서 러시아의 대외 정책과 제국적 야망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 |
| 154 | 154 | == 근대적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로마 계승 의식 == |
| 155 | === [[이탈리아]] === | |
| 155 | === [[이탈리아 내셔널리즘|이탈리아]] === | |
| 156 | 156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탈리아 내셔널리즘)] |
| 157 | [[로마 문명]]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는 476년 [[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서로마 제국]])[* 당대에는 서로마와 동로마가 서로 다른 제국으로서 존재한 것이 아닌 하나의 로마 제국을 두 황제가 나눠서 통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상실 이후에는 더이상 제국의 중심부가 아니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에 다시 수복되었다가 분열된 이후에는 로마가 아닌 독자 정체성을 내세우는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했으나[* 이탈리아 남부 일대는 1071년까지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긴 했다.], 로마에 대한 향수 자체는 계속 남아있었다. | |
| 157 | [[로마 문명]]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는 476년 [[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서로마 제국]])[* 당대에는 서로마와 동로마가 서로 다른 제국으로서 존재한 것이 아닌 하나의 로마 제국을 두 황제가 나눠서 통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상실 이후에는 더이상 제국의 중심부가 아니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에 다시 수복되었다가 분열된 이후에는 로마가 아닌 독자 정체성을 내세우는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했으나[* 이탈리아 남부 일대는 1071년까지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긴 했다.], 로마에 대한 향수 자체는 계속 남아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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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 159 | 예를 들면 중세 초기 [[교황령]]에서는 [[고대 로마]] 시절의 공식 국호였던 'Senatus Populusque Romanus(로마 원로원과 인민)'의 약자인 [[SPQR]]이 도시 [[로마]]를 상징하는 문장과 교황청 발행 주화에 반영되었고, 12세기 교황령에서 코무네(Comune) 정권을 수립한 콜라 디 리엔초는 [[로마 공화정]]의 관직인 [[호민관]]을 자칭했으며, 근세에 들어서는 로마 문화의 부흥을 추구하는 [[르네상스]]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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