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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카롤루스의 제국은 황제국이되 로마 제국은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존속하게 되었고, 이는 카롤루스 왕조 단절 이후 오토 대제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독일 왕국]])을 통해 재편된 962년 이후의 [[신성 로마 제국|서방 제국]]에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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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대제의 아들인 오토 2세는 동로마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딸 테오파노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3세가 제위를 계승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외손인 황제가 등장했고, 이후의 여러 황제들도 동로마 황실과 통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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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대제의 아들인 오토 2세는 동로마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딸 테오파노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3세가 제위를 계승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외손인 황제가 등장했고, 이후의 여러 황제들도 동로마 황실과 통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황제들은 신성 로마 황제들의 정통성까진 인정하지 않아서 서방 황제들이 외교 문서에서 로마 황제를 칭하는 것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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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 제국이 우호관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것일 뿐, 로마 서방 제국 동등한 로마 제국으로 인정한 것은 결코니었으며, 로마는 서방 제국의 황제들이 자국과의 외교에서 로마를 칭하는 에는 민감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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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비롯한 동정교회 른 문화권의 입장과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노리기도 했고, 16세기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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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로마의 입장과별개로, [[교황]]의 수위권미치서방 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의제기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티야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기도 , 16세기에는 프랑스프랑수아 1세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기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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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더이상 자신들보다 정통성앞서동로마남아있지 않으니 유일한 로마 제국이라 자처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는데, 로마 제위 계승을 표방한 오스만 제국, 차르국(이후러시아 제국) 등은 신성 로마 제 스스로는 물론이서방 세계다른 들도 인정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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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는 더이상 자신들보다 정통성이 앞서는 동로마가 남아있지 않으니 유일한 로마 제국이라 자처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으며, 동로마 제위 계승을 표방한 오스만 제국, 루스 차르국(이후의 러시아 제국) 등은 신성 로마 제국 스스로는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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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신성 로마 제국은 동방 정교회권이나 타 문화권의 입장과는 관계 없이,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로마 제국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해나갔으며, 이는 30년 전쟁으로 제국이 수많은 영방국가들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로 전락한 이후에도 명분상으로는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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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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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카롤루스 대제와 위그 카페를 거쳐 자신에게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교황을 파리로 끌고 와 대관식을 거행함으로써 [[프랑스인의 황제|황제]]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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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의 후계자들이 다스린 [[신성 로마 제국]]이 아직 멸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위그 카페의 후손인 부르봉 왕조를 혁명으로 축출한 나라의 집권자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하자가 있었으나, 당시 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당대 강대국들을 일방적으로 찍어누르고 황제 선출권을 가지는 [[선제후]] 구성을 자기 입맛대로 바꿀만큼 절정을 달했던 나폴레옹의 무력 앞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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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805년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와 [[전러시아의 황제|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맹군을 격파하며, 기존에 로마 제위 계승을 주장하던 두 제국으로부터 완승을 거두었으며, 1806년에는 공식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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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성 로마 황제였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 나폴레옹이 황제를 칭한 바로 그 해에 신성 로마 제위와 별도로 오스트리아 황제위를 창설한 상태였다.]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즈를 반강제로 나폴레옹에게 시집보내야 했고, 그렇게 태어난 나폴레옹 2세는 [[로마 왕]](Roi de Rome)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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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정을 비롯한 열련의 실책으로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하고 1815년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된 이후에는, 부르봉 왕가의 복고 왕정과 7월 왕정, 제2공화국 등을 거치고 1852년에 이르러서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이 들어섰는데, 제2제국은 제1제국보다도 2배 이상 긴 시간을 존속했으나 1870년 보불전쟁 폐지로 멸망하며, 프랑스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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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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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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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로마 제국|동로마 황제위]] 계승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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