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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9 vs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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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의 후계자인 페타르 1세(재위 927~969)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고, 동로마 황실과 혼인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불가리아 군주의 지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불가리아 군주는 제한적이나마 동로마 황제의 승인 아래 황제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 제국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불가리아 황제가 동로마 황제와 완전히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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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1세기 초[[바실리스 2세]]에 의해 불가리아가 동로마 제국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위 계승론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은 1018년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를 제국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불가리아 지역은 동로마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불가리아의 독립적인 황제위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불가리아는 동로마의 행정 체제 속에 편입되었고,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총대주교 임명 등 불가리아 정교회에 대한 실권은 모두 황제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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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1세기 초 [[바실리스 2세]]에 의해 불가리아가 동로마 제국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위 계승론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은 1018년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를 제국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불가리아 지역은 동로마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불가리아의 독립적인 황제위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불가리아는 동로마의 행정 체제 속에 편입되었고,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총대주교 임명 등 불가리아 정교회에 대한 실권은 모두 황제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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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 1세의 야망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그의 통치는 불가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이후 불가리아의 독립성과 국가적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비록 불가리아가 동로마 황제위를 온전히 계승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력은 불가리아 제국이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과 경쟁하는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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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불가리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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