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105 vs r106
......
3939
4040
오토 대제의 아들인 오토 2세는 동로마 [[마케도니아 왕조]]의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딸 테오파노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3세가 제위를 계승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외손인 황제가 등장했고, 이후의 여러 황제들도 동로마 황실과 통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황제들은 신성 로마 황제들의 정통성까진 인정하지 않아서 서방 황제들이 외교 문서에서 로마 황제를 칭하는 것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4141
42
동로마를 비롯한 동방 정교회 세계나 다른 문화권의 입장과는 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는 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의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기도 했고, 16세기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42
동로마를 비롯한 동방 정교회 세계나 다른 문화권의 입장과는 별개로, [[교황]]의 수위권이 미치는 서방 가톨릭 세계 내에서만큼은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권위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여진 편인데, 신성 로마 제위가 장기간 공석이던 대공위시대에는 제국의 주축인 독일 지방과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카스티야 등의 군주 및 귀족들이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기도 했고, 16세기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에 맞서 황제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4343
4444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는 더이상 자신들보다 정통성이 앞서는 동로마가 남아있지 않으니 유일한 로마 제국이라 자처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는데, 동로마 제위 계승을 표방한 [[오스만 제국]], 루스 차르국(이후의 [[러시아 제국]]) 등은 신성 로마 제국 스스로는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4545
......
5959
6060
따라서 나폴레옹이 칭제한 바로 그 해에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함으로써, 신성 로마 황제와 [[오스트리아 황제]]라는 2개의 제위를 겸하게 되었다.
6161
62
[[오스트리아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내부와 외부의 합스부르크 영지들을 통합하며 창설되었기에,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두 제국에 동시에 속하는 영지가 여럿 존재했다.
62
[[오스트리아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내부와 외부의 합스부르크 영지들을 통합하며 창설되었기에,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두 제국에 동시에 속하는 영지가 여럿 존재했다.
6363
64
신성 로마 제국과 달리 오직 합스부르크 혈통을 통해 정통성을 보장받는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비록 직접적으로 로마를 계승했다 표방하진 않았지만, [[쌍두수리]] 등 신성 로마 시절부터 쓰던 문장을 비롯한 각종 상징을 계속 사용했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창설된 독일 연방에서는 이러한 위상을 인정받아 의장국 역할을 했다.
64
신성 로마 제국과 달리 오직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혈통]]을 통해 정통성을 보장받는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비록 직접적으로 로마를 계승했다 표방하진 않았지만, [[쌍두수리]] 등 신성 로마 시절부터 쓰던 문장을 비롯한 각종 상징을 계속 사용했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창설된 독일 연방에서는 이러한 위상을 인정받아 의장국 역할을 했다.
6565
6666
1866년 보불전쟁 패전으로 독일 연방에서 축출된 이후에는 1867년 대타협을 통해 헝가리인들과 공동의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제국]])을 출범했는데, 이는 새로운 칭호를 창설한 게 아니라 헝가리 왕국을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동군연합 체제로 인정한 것이라, 황제로서의 칭호는 1918년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 [[오스트리아 황제]]였다.
6767
===== [[독일 제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