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69 vs r70
......
2727
또한 카롤루스의 칭제 이후의 서방인들도 동로마가 로마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아서, 4차 십자군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로마니아 제국[* [[라틴 제국]]이 자칭한 국호.], 로마 제국의 3/8의 주인[*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칭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15세기 서방 국가들을 순방한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8세를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그를 '[[로마인의 황제]]이자 왕'으로 표현한 주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828
2929
결론적으로, 동로마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로마 제국의 연속성을 유지한 유일한 국가였으며, 이를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지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신념이었으며, 제국의 존재 자체가 로마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 후 동로마는 서로마의 제위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여겼고, 그 증거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이 있다.]
30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30
==== [[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3131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서 [[여제]] 이리니가 즉위한 이후 적법한 남성 [[로마 황제]]가 없다는 이유로 [[교황]]에게 [[대관식|대관]]받아 로마 황제를 칭했다.
3232
3333
이민족 군주인 그가 황제를 칭한 것을 당대의 [[동로마인|로마인]]들이 쉽사리 인정할리가 없었기에, 그는 이리니 여제와의 결혼을 통해 진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려 핬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봉기가 일어나 여제가 축출되고 니키포로스 1세가 즉위하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