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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8 vs 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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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동음이의어)#s-3|프랑스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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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카롤루스 대제와 위그 카페를 거쳐 자신에게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교황]]을 파리로 끌고 와 [[대관식]]을 거행함으로써 [[프랑스인의 황제|황제]]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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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의 후계자들이 다스린 [[신성 로마 제국]]이 아직 멸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위그 카페의 후손인 부르봉 왕조를 혁명으로 축출한 나라의 집권자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하자가 있었으나, 당시 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당대 강대국들을 일방적으로 찍어누르고 황제 선출권을 가지는 [[선제후]] 구성을 자기 입맛대로 바꿀만큼 절정에 달했던 [[나폴레옹]]의 무력 앞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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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의 후계자들이 다스린 [[신성 로마 제국]]이 아직 멸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위그 카페의 후손인 부르봉 왕조를 혁명으로 축출한 나라의 집권자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하자가 있었으나, 당시 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제국|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당대 강대국들을 일방적으로 찍어누르고 황제 선출권을 가지는 [[선제후]] 구성을 자기 입맛대로 바꿀만큼 절정에 달했던 [[나폴레옹]]의 무력 앞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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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805년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와 [[전러시아의 황제|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맹군을 격파하며, 기존에 로마 제위 계승을 주장하던 두 제국으로부터 완승을 거두었으며, 1806년에는 공식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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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성 로마 황제였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 나폴레옹이 황제를 칭한 바로 그 해에 신성 로마 제위와 별도로 오스트리아 황제위를 창설한 상태였다.]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즈를 반강제로 나폴레옹에게 시집보내야 했고, 그렇게 태어난 나폴레옹 2세는 [[로마 왕]](Roi de Rome)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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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정을 비롯한 일련의 실책으로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하고 1815년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된 이후에는, 부르봉 왕가의 복고 왕정과 7월 왕정, 제2공화국 등을 거치고 1852년에 이르러서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이 들어섰는데, 제2제국은 제1제국보다도 2배 이상 긴 시간을 존속했으나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멸망하며, 프랑스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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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정을 비롯한 일련의 실책으로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하고 1815년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된 이후에는, 부르봉 왕가의 복고 왕정과 7월 왕정, 제2공화국 등을 거치고 1852년에 이르러서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이 들어섰는데, 제2제국은 [[프랑스 제1제국|제1제국]]보다도 2배 이상 긴 시간을 존속했으나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멸망하며, 프랑스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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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제국]] ~ [[이중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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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선제후]] 구성을 입맛대로 바뀌고, 1804년에는 [[프랑스인의 황제|황제]]를 칭하기까지 하자,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위를 나폴레옹이나 그 꼭두각시에게 빼앗기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나폴레옹의 막강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합스부르크 군주국|여러 합스부르크 영지들]]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할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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