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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4 vs r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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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로마 황제들은 이러한 시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불가리아의 강성함을 위협으로 여겼으며, 시메온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직접 점령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견제하는 데 주력했다. 결국 시메온은 수도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의 야심은 실현되지 못한 채 927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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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의 후계자인 페르 1세(재위 927~969)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고, 동로마 황실과 혼인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불가리아 군주의 지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불가리아 군주는 제한적이나마 동로마 황제의 승인 아래 황제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 제국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불가리아 황제가 동로마 황제와 완전히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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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의 후계자인 페르 1세(재위 927~969)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고, 동로마 황실과 혼인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불가리아 군주의 지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불가리아 군주는 제한적이나마 동로마 황제의 승인 아래 황제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 제국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불가리아 차르|불가리아 황제]]가 동로마 황제와 완전히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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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1세기 초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불가리아가 동로마 제국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불가리아 제1제국의 황제위 계승론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은 1018년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를 제국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불가리아 지역은 동로마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불가리아의 독립적인 황제위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불가리아는 동로마의 행정 체제 속에 편입되었고, 불가리아 정교회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총대주교 임명 등 불가리아 정교회에 대한 실권은 모두 황제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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