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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 | 161 |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대표하는 혁명가 중 하나였던 주세페 마치니는 '[[로마 제국|황제들의 로마]] 이후에 [[교황령|교황들의 로마]]가 있었고, 이후에는 인민들의 로마가 올 것이다'라 주장하며 로마 공화국 시절처럼 이탈리아가 하나의 [[이탈리아 공화국|공화국]]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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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 공화국이 아닌 입헌군주제로의 통일을 추구한 사르데냐 왕국과 그 후신인 [[이탈리아 왕국]]의 경우, 마치니처럼 직설적으로 로마 계승을 외치진 않았고, [[황제]]를 칭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하지 않았고, 1870년에는 교황령을 강제 병합하며 로마를 손에 넣는데는 성공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을 무시하고 교 | |
| 163 | 공화국이 아닌 입헌군주제로의 통일을 추구한 사르데냐 왕국과 그 후신인 [[이탈리아 왕국]]의 경우, 마치니처럼 직설적으로 로마 계승을 외치진 않았고, [[황제]]를 칭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탈리아 왕국은 1861년 건국 당시에는 도시 로마를 보유하지 않았고, 1870년에는 교황령을 강제 병합하며 로마를 손에 넣는데는 성공했으나 나폴레옹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을 무시하고 교황을 압박하여 황제 대관식을 치를만한 힘은 없었다. 또한 입헌군주제라 칭호 격상 및 국호 변경을 군주의 입맛대로 결정할 수 없었고, 교황청과의 관계 역시 극도로 험악했다. 그나마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 이후에는 일당독재 구축 및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한 교황과의 화해가 이루어져서 작정하고 [[이탈리아 국왕|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황제로 올리고자 했으면 못 할 건 없었으나, 그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하여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통일 이후 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추구하며 로마에 버금가는 영토를 확보하려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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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 165 | 베니토 무솔리니는 마치니의 구호를 자기 입맛에 맏게 변형한 '황제들의 로마 이후에 교황들의 로마가 있었고, 이후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파시스트 로마]]가 올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이를 [[제3의 로마]](Terza Roma)라 명명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SPQR을 각종 시설물에 써먹었는데 이 과정에서 [[반달리즘|도로 뚫는답시고 로마 시대 문화재를 때려부수고(...)]], 2차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했다가 깨지는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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